Dramaturgie: Werner Hintze, Juliane Votteler, Jens Schroth
+0. 문득...발레나 볼까??
그래...
그렇게 갑작스레 찾은 오페라하우스...
이날 공연은 오페라 '엘렉트라'...
+1. 중학교 때 창원 KBS홀에서 어설픈 '라트라비아타'를 본 이후로 처음으로 극장에서 오페라를 봤다...
2003년 겨울 그녀와 DVD로 도밍고가 출연하는 '아이다'를 보면서도 육중한 아이다의 비쥬얼에 홀딱 깨서...
'아이다는 좀 아이다'라는 탄식을 연발하며 보았더랬는데...
머리 굵어지고 극장에서 처음 맞은 오페라...'엘렉트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슈트트가르트 특유의 현대적 각색도 좀 낯설은데다가...
거구에 남성미 넘치는 엘렉트라에게서 비련을 느끼기가 좀 힘들었다...
엘렉트라인지 엄마인지 구별하기 쉽지 않은 외모...
게다가 오페라로 처음 접하는 슈트라우스의 음악은 난해하기 그지 없었다...
+2. 그래도 오랜만의 극장 나들이로...독일의 학생할인의 이점을 새삼 깨달았다...
공연 직전에 끊은 학생표...단돈...8.50유로에
우리는 백발이 성성한 노부부들 사이...무대 바로 앞 4번째줄 한 가운데에서 공연을 즐겼다...
+3. 간만의 오페라 구경...난해한 음악에다 무대와 무대 위 자막 사이를 훑느라 정신은 없었지만...
독일의 저렴한 문화생활의 한 귀퉁이를 접기 시작하다...
Nach Agamemnons Rückkehr aus dem Trojanischen Krieg wurde er von seiner Frau Klytämnestra und ihrem Liebhaber Aegisth im Bade erschlagen. Die
beiden Töchter Elektra und Chrysothemis wurden fortan wie niedrigste Dienerinnen gehalten. Der Bruder Orest wurde als Kind nach der Bluttat vorsorglich vom
Königshof entfernt.
In Mykene unterhalten sich fünf Mägde über die bedrückende und zugleich explosive Situation am Hof. Die Königstochter Elektra wird von ihnen verhöhnt, weil
sie sich wie ihresgleichen halten lässt. Nur die Jüngste ergreift für Elektra Partei und wird von den anderen dafür geschlagen.
Wieder beschwört Elektra die Vision der Ermordung ihres geliebten Vaters Agamemnon. Rache zu nehmen an seinen Mördern, ihrer Mutter Klytämnestra und
Aegisth, ist ihr einziger Lebensinhalt. Sie wartet auf die Rückkehr ihres Bruders Orest.
Die jüngere Schwester Chrysothemis warnt Elektra davor, dass Klytämnestra sie einsperren will. Chrysothemis beschwört Elektra, sich mit den Verhältnissen
zu arrangieren und ihren Hass aufzugeben, der beide zu Gefangenen macht. Mit ihrem ungebrochenen Willen zum Leben ist Chrysothemis der Schwester
verhasst, sie weist sie von sich.
Geplagt von Alpträumen lässt Klytämnestra erneut ein Opfer bringen. Sie sucht Elektras Rat, welches Tier noch zu schlachten sei, damit sie Ruhe fände.
Elektra orakelt über ein Menschenopfer. Fast hat sie mit dem desolaten Zustand ihrer Mutter Mitleid; dass Klytämnestra aber Aegisth nicht aufgeben will,
entfacht ihre Rachsucht umso heftiger: Klytämnestras eigenes Blut will Elektra fließen sehen. Da wird die Nachricht überbracht, dass Orest gestorben sei.
Klytämnestra triumphiert.
Elektra ist entschlossen, mit Hilfe der Schwester das Werk der Rache selbst zu vollbringen. Doch Chrysothemis entzieht sich Elektras suggestiver Verführung
zur Gewalt. Elektra verflucht sie und scharrt nach dem vergrabenen Beil, der Mordwaffe. Ein Fremder erscheint; er bezeugt Elektra den Tod des Orest. Aus
ihrer Verzweiflung hört der Fremde die Stimme des gemeinsamen Blutes. Er selbst ist Orest. Die Geschwister erkennen einander.
Orest ist gekommen, die ihm auferlegte Tat zu tun: er ermordet seine Mutter. Ihr Todesschrei lässt die Mägde zusammenlaufen. Von einem Diener geholt,
kommt Aegisth, um sich den Tod des Orest bestätigen zu lassen. Elektra weist ihm den Weg. Auch er wird von Orest getötet.
Chrysothemis feiert den Doppelmord als Tat ihrer Befreiung. Elektra erkennt ihre Rolle im Spiel der Gewalt und bricht zusammen. Auf Orest, dem neuen
아가멤논이 트로이 전쟁에서 돌아온 뒤, 그는 아내 클뤼템네스트라와 그녀의 정부 아이기토스에 의해 목욕 중 살해당한다. 두딸 엘렉트라와 크리소테미스는 즉시 최하급 시녀 처지로 떨어지게 된다. 어린 남동생, 소년 오레스트는 (왕의) 시해 후에 궁으로부터 피신을 한다.
미케네, 다섯 하녀가 정원에서 억압적이고, 동시에 곧 폭발할 듯한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왕의 딸 엘렉트라는 그녀들로부터 조롱을 당한다. 그녀도 그들과 같은 취급을 당하기 때문이다. 오로지 가장 어린 하녀만이 엘렉트라의 편에 서고, 그래서 덕분에 다른이들로부터 쥐어박힌다.
엘렉트라는 또다시 그의 사랑하는 아버지 아가멤논이 살해당하는 환영앞에 맹세한다. 그의 살인자들, 그녀의 어머니 클뤼템네스트라와 아이기토스에게 복수하는 것만이 그녀의 유일한 삶의 목표이다. 그녀는 남동생 오레스트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
그녀의 어린 여동생 크리소테미스는 엘렉트라에게, 클뤼템네스트라가 그녀를 또다시 감금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크리소테미스는 엘렉트라에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두 사람을 사로잡고있는 그녀의 증오를 포기하라고 애원한다. 생에 대한 강한 의지때문에 크리소테미스는 언니를 미워하고, 그녀를 멀리한다.
악몽에 시달리는 클뤼템네스트라는 또 다시 희생양을 찾았다. 그녀는 평정을 찾기위해, 또 어떤 동물을 학살할 수 있는지 엘렉트라에게 조언을 구한다. 엘렉트라는 인간이 희생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녀는 그녀 어머니의 서글픈 신세에 거의 동정을 느낄뻔 한다. 그렇지만 클뤼템네스트라와 아이기토스가 포기하려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그녀의 복수심은 더 강렬해진다: 클뤼템네스트라 자신의 피가 흐르기를 엘렉트라는 바랐다. 그때 오레스트가 죽었다는 전갈이 전해진다. 클뤼템네스트라는 의기야양해한다.
엘렉트라는 여동생의 도움을 받아 복수를 직접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한다. 그렇지만 크리소테미스는 엘렉트라의 강한 유혹을 강하게 뿌리친다 엘렉트라는 그녀를 저주하며, (아버지의) 살해도구였던 파묻힌 도끼를 찾아 헤맨다. 한 이방인이 나타난다; 그는 엘렉트라에게 오레스트의 죽음을 증언한다. 절망한 가운데 그녀는 낯선이의 음성에서 혈육의 정을 느낀다. 그가 바로 오레스트였다. 남매는 서로를 알아본다.
오레스트는 그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온 것이다: 그는 그의 어머니를 살해한다. 그녀의 비명에 하녀들은 달려나간다. 한 하인이 아이기토스를 데려와 오레스트의 죽음을 확인시키려한다. 엘렉트라는 그에게 길을 열어주고, 그 역시도 오레스트의 손에 죽는다..
크리소테미스는 이 두 살인사건을 통해 자신이 해방된 사실을 기뻐하고, 엘렉트라는 이 사건에서 그녀의 역할을 깨닫고는 무너져내린다. 어머니를 살해한 죄책감이 새로운 독재자 오레스트를 짓누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그렇듯, 퀸 역시 범죄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살인을 한 적도, 물건을 훔친 적도 없었고, 그런 짓을 한 사람을 알지도 못했다. 또 경찰서에 들어가 본 적도, 사설탐정을 만나 본 적도, 범죄자와 얘기를 해본 적도 없었다. 그런 일들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은 모두 책과 영화와 신문에서 얻은 것이었다. 그렇지만 퀸은 그것이 자기에게 불리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의 이야기에서 관심이 끌리는 것은 그 이야기와 세상과의 관계가 아니라 그 이야기와 다른 이야기들과의 관계였으니까. 윌리엄 윌슨이 되기 전부터도 퀸은 대단한 추리 소설 애독자였다. 그는 추리 소설들이 대부분 형편없이 씌여졌고 거의 모두가 건성으로 하는 검증에도 남아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러면서도 추리 소설의 형식에 마음이 끌렸다. 그가 읽으려고 들지 않은 것은 아주 드물게 보이는 말할 수 없이 형편없는 추리물뿐이었다. 다른 책들에 대한 취향은 아주 엄격해서 편협하다고까지 할 정도였던 반면, 추리 소설에 대해서라면 그는 여간해서 어떤 차별도 두지 않았다. 또 기분이 괜찮을 때는 별 어려움 없이 열 권이나 열두 권쯤을 내리 읽어 채울 수도 있었다. 그것은 그를 사로잡고 있던 일종의 허기, 특별한 음식에 대한 갈망 같은 것이었고, 그 허기가 채워질 때까지는 그는 읽기를 멈추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 책들에서 그가 마음에 들어 한것은 충실하고 경제적인 감각이었다. 제대로 된 추리 소설에서는 아무것도 낭비되지 않는다. 문장 하나, 단어 하나도 의미심장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리고 의미심장하지 않은 것까지도 그렇게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서 결국은 의미심장한 것이 된다. 책의 세계는 가능성과 비밀의 모순으로 소용돌이치며 생명력을 얻는다. 눈에 보이거나 말해진 것 모두가, 아무리 사소하고 하찮은 것일지라도, 이야기의 결과와 관련될 수 있기에 그 어느 것도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이 핵심이 되어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하나하나의 사건과 함께 책의 중심을 바꾼다. 그러므로 중심은 어디에나 있으며, 책이 결말에 이르기까지는 어느 한 범주도 소홀히 할 수가 없다.
탐정은 눈여겨보고 귀 기울여 듣는 사람, 사물과 사건들의 늪을 헤치며 그 모든 것을 하나로 통합해 의미가 통하게 해 줄 생각과 관념을 찾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작가와 탐정은 서로 바뀔 수 있는 존재이다. 독자는 탐정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면서 지엽적인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나는 것을 마치 처음인 것처럼 경험한다. 그리고 마치 주위의 사물들이 자기에게 말을 걸기라도 하듯, 자기가 이제 그것들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이 단순히 존재한다는 사실 이상의 다른 의미를 띠기 시작하기라도 하듯 그런 것 들을 알아차리게 된다. Private Eye. 퀸에게는 그 말이 3중의 의미를 지니과 있었다. 즉, 그말은 (조사자 investigator)를 의미하는(i)라는 글자일 뿐 아니라 자신의 살아 숨쉬는 육체에 감추어져 있는 조그만 생명의 싹인 대문자 (I)이기도 했고, 그와 동시에 작가의 육체적인 눈,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세상을 내다보고 그 세상이 모습을 드러내도록 요구하는 눈이기도 했다. 지난 5년 동안 퀸은 그 동음이의어에 붙잡혀서 살아온 셈이었다.
* 폴 오스터 '뉴욕 3부작-유리의 도시' 중에서
지난 주에 집에서 소포가 왔다...
상할 것이 없어서 배편으로 보내진 소포...그래서 오랜 기간을 둘러온 소포를 기다리며...
정확히 말하자면 그 안에 들어있는 책들을 기다리면서 한 두어달 간 가슴설레였었다...
그리고 덕분에 주말 내내 퀸 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한글과 읽을 거리에 대한 허기짐을 신난다고 열심히 채웠다.
무작위로 연이어 집어든 2권의 책이 공통적으로 언어와 사물에 대한 관심, 또 그에 대한 표현, 독자와 작가와의 관계 등을 다루고 있어서...
2번째로 집어들었던 뉴욕 3부작을 읽는 동안은 내내...
한쪽으로 생각의 곁가지를 쳐서 한편으로 그래 프루스트의 말이 맞아...음...그렇군...이런 식으로 고개를 끄덕끄덕 하곤 하는 거다..
아무튼...글 속의 인물이나 상황이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질 수 있을 때, 글이 더 흥미롭게 다가온다는 프루스트의 말은 백번 지당하다.
위의 문구를 읽으면서 나도 그녀 J가 생각났다...
특정 기호, 취향에 관한 꽤 근사한 이유...
꽤 유명한 어느 건축가가 에세이 비스무리한 글에다...
추리 소설과 건축과의 관계 어쩌구 하며...
장르에 대한 일반적 칭찬 위에 은근 슬쩍 자신의 그에 대한 특별한 기호를 얹어 자신의 특별함과 결부시켜 과시하는 듯 써 놓은 걸 본 이후로...
그러나 나는 듣고 있지 않았다.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미치광이 같은 것을. ´내가 뭐가 되고 싶은지 말해줄까?´하고 내가 입을 열었다.
´내가 뭐가 되고 싶은지 말해줘? 만일 내게 그 지랄같은 선택권이 있다면 말야.´
´뭔데? 욕 좀 하지 말고 말해봐.´
´너 그 노래 알고 있지? (호밀밭을 걸어오는 사람을 붙잡는다면) 하는 노래 말이야. 바로 내가 되고싶은 것은.....´
´그건 (호밀밭을 걸어오는 누군가를 만나면)이라는 노래야.´ 하고 피비가 말했다. ´그건 시야. 로버트 번스가 쓴.´
´알고 있어. 로버트 번스의 시라는 것은.´
피비의 말이 옳았다. (호밀밭을 걸어오는 누군가를 만나면)이라고 해야 옳았다. 사실 그때는 그 시를 잘 몰랐다.
´만나면을 붙잡는다면으로 잘못 알고 있었어.´하고 말했다. ´어쨌거나 나는 넓은 호밀밭 같은 데서 조그만 어린애들이 어떤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을 항상 눈앞에 그려본단 말야. 몇천 명의 아이들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곤 나밖엔 아무도 없어. 나는 아득한 낭떠러지 옆에 서 있는 거야. 내가 하는 일은 누구든지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것 같으면 얼른 가서 붙잡아주는 거지. 애들이란 달릴 때는 저희가 어디로 달리고 있는지 모르잖아? 그런 때 내가 어딘가에서 나타나 그 애를 붙잡아야 하는 거야. 하루 종일 그 일만 하면 돼. 이를테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는 거야. 바보같은 짓인 줄은 알고 있어. 하지만 내가 정말 되고 싶은 것은 그것밖에 없어 바보 같은 짓인 줄은 알고 있지만 말야´
피비는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또 ´아빠는 오빠를 죽이고 말거야.´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 J.D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 중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다보면...
주인공이 끼고 다니는 ´위대한 개츠비´와 ´호밀밭의 파수꾼´만이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제대로 된 소설이다...
어쩌고 저쩌고 하는 꽤나 시건방진 문구가 나온다...
당시에 작가는 커녕 제목조차 처음 들어본 나로서는 일단은....도대체 어떤 책인데??라는 호기심부터 갖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키 소설 속의 그 아이만큼 감명받은 건 아니지만...
´상실의 시대´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캐릭터와 그들간의 갈등 구조 등이 이 2권의 흐름과 꽤나 비슷하기도 하다고 느끼면서...
하루키가 이 2권의 캐릭터와 플롯을 어느 정도 따온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고...
뭐 그렇다면 주인공이 그 정도 평가를 내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보고...
(꽤나 강력한 평을 먼저 접하고 읽은 덕분에)
소설과는 직접 관계도 없는 딴지도 한번 걸어보며...
꽤 즐겁게 책장을 넘길수 있었다...
둘 다 재미있는 책들인 것만큼은 사실이니까...
아무튼 이러이러한 연유로 읽게 됐던 호밀밭의 파수꾼은
2003년 봄, 사두고 읽지 못한 몇 권의 책 중 한 권이라는 이유로...
한국을 떠나오는 짐 사이에 껴서 나와 함께 독일로 왔었다.
특별한 의미없이 정말로 우연히 유학길을 동행했었던 이 책은 이젠 3년을 바라보는 이곳 생활의 추억을 여러모로 함께 담아서 내게 만큼은 너무나 소중한 책이 되어버렸다.
힘들 때... 갑자기 한글이 너무너무 읽고 싶을 때...
맘 편하게 집어들고 단숨에 읽어버리곤 크게 한번 한숨을 쉬어 볼 수 있게하는 위안거리가 되주었고...
또 이 곳 친구들에게 빌려 주고 돌려 읽으며,
각기 나름의 포스트잍을 끼워넣으며 또다른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통로가 되기도 했다...
피비가 모아둔 용돈을 빌려줄 때 주인공 소년과 함께 펑펑 울어버린 친구도 있었고...
피비처럼 자신을 잡아주는 동생이 있었다면...그렇게 방황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던 친구도 있었고...
물론 이 책이 왜, 도대체 어디가 훌륭하다는지 모르겠다던 친구도 있었다...
연말에 꽤 오래 (거의 1년) 이리저리 떠돌던 이 책을 돌려 받아서, 오랜만에 다시 한번 집어들었다.
이번 연말엔 유난히 눈이 많이 왔다.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해서 연일 4일인가?? 그렇게 줄창 눈이 내리는 게다... 덕분에 나의 게으름에 핑계가 붙었지만... 크리스마스 연휴를 시작하던 그날부터...'작업실 올라가서 작업하자!!' 던 다짐은... 느즈막히 일어난 아침 창밖에 여전히 흩날리는 눈발과 함께 그렇게 흩어지는 거다... 밤새 책 한권을 들고 침대 위를 뒹굴거리다 시계바늘이 7시를 향해 다가가는 걸 보면서 이제는 자야겠다고 마음 먹은 그때의 창밖 풍경...
3년 전 이맘 때... 눈이 참 많이 오던 겨울... 새벽 창밖 풍경... 독일은 참 변화가 느리다... 올 겨울은 눈이 별로 많이 내리지 않았지만... 창 밖 풍경은 눈을 빼놓고서는 여전히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이 풍경을 꼬박 3년 반을 보아왔다... 내년 이맘 때는 어떤 풍경을 바라볼 지... 두려움도 반이긴 하지만...나머지 반 기대에 벌써부터...설렌다...
derart, dass jeder Winkel... in seiner Bestimmung vollkommen festgelegt wird, dass also ein Wohnzimmer zum Wohnen und Schlafkabinen zum Schlafen und für
nichts anderes bestimmt sind... nach Art eines Ingenieurs, der die Normalfamilie mit drei Kindern als der Betrieb ansieht, für den er die Maschinen und die Fabrik
konstruiert. * Bruno Taut
그렇게... 각각의 공간들, 공간 귀퉁이들을 단지 각각 쉬고 머무기 위한 공간으로서의 거실, 잠자기 위한 공간으로서의 침실...이런 식으로 그 외의 다른 기능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공간으로 고정시킨다면...
그것은 3 아이를 가진 일반적인 가정을 일종의 기업으로 보고, 그를 위한 기계들 그리고 작업을 위해 필요한 공장들을 건설하는 엔지니어와 같은 태도이다!
한국에서는 들어보지 못했었지만 독일에서는 근대 초기 작가로 거장의 반열에 올라있는 독일 작가 브루노 타우트..
(건축사를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서 모를 수도 있지만...)
이 사람이 1930년대에 한 이야기라는데, 가끔씩 너무나 당연한 듯한 이야기들에서 순간 뜨끔하게 될 때가 있다.
그런데 웬걸...아침에 눈 뜨며 물 한잔 마시며, 이 녀석들 한테도 물 한모금 나눠주는 재미, 이래적으로 눈부시게 파랬던 가을 하늘아래 푸르른 잎사귀들이 안기는 즐거움과 흐뭇함이 그래도 꽤 쏠쏠한 것이었다.
얼떨결에 화분 잘 키운다고 1달간 같이 지냈던 그녀 M한테 칭찬도 듣고...
그녀 왈...이렇게 바실리쿰을 잘 키우는 건 처음 봤단다...
그런데... 요즘 이 녀석, 바실리쿰 이라는 놈이 좀 문제다...
애시당초 이 놈을 들일 때 부터의 주 목적이 스파게티에 더 신선한 향을 공급하겠다는 것이기는 했었지만....
한국 다녀오고서 한참 동안은 갑자기 스파게티에 대한 열의가 꺽여서...
또 한달 동안은 같이 지내던그녀가 스파게티 같은 거 별로 안 좋아해서...
등등의 이유로 한동안 스파게티를 멀리하면서...
애초의 목적과 달리 바실리쿰은 관상용으로 방 창틀에 그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역시나 나의 스파게티 사랑이 결국에 어디가겠는가???
11월 중순을 넘기며...스파게티 요리가 재개되었다...특히나 스스로의 해물 스파게티 요리 실력에 감동하면서...
그런데 그 무성한 잎들 사이에서 몇개 떼어 낸다고...큰 타격이 절대 아닐 터인데...
갑자기 이 놈들이 식용으로 용도 변경 되면서부터 갑자기 시들시들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물론 그 사이에 실수로 하루 창일 열어두고 외출을 해서, 종일 찬바람 쏘이게 한 적이 있긴 하지만은...
그래도 따악 시기 적절하게 내가 먹자고 팔 걷어 붙이고 나서면서부터...
이 녀석들이 시들시들 마르기 시작하는 걸 보니...
꼭 내가 헨젤과 그레텔의 마녀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이놈들 한번 잡아 먹어보겠다고 꾸역꾸역 먹이고 언제나 살이 좀 붙나 기다리는 마녀에게...
헨젤이 통통한 자기 팔 대신에 먹고 남은 뼈다귀를 내 밀었듯이...
이 녀석들도 내 눈앞에서만 시들시들하고, 내가 자리 비운 사이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쌩쌩해지는 것은 아닌가...
모 이런 말도 안되는 상상을 잠시 해보는 거다...
그림형제를 본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가?
이 영화 지독하게 재미없었는데...참...
사람의 눈길과 따뜻한 관심이 식물의 세계와 교감할 수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바다.
식물학자 루터 버뱅크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식물을 독특하게 길러내고자 할때면 나는 무릎을 꿇고 그 식물에게 말을 건넨다.
식물에게는 20가지도 넘는 지각 능력이 있는데, 인간의 그것과 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그들에게는 그런 능력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나는 지난 여름 절 마당 한쪽에 버려진 덩굴식물이 눈에 띄어 그걸 주워다 화분에 심어 두었다.
최근에야 그 이름이 '싱고니움'이란 걸 알았다. 그때는 이파리가 두 잎뿐이었는데 한 잎은 이내 시들고 말았다.
날마다 눈길을 주면서 목이 마를까봐 물을 자주 주었다. 덩굴은 한참 만에 기운을 차리고 새 줄기와 잎을 내보였다.
받침대를 세워주고 차찌꺼기 삭힌 물을 거름삼아 주었다.
겨우 한 잎뿐이었던 것이 지금은 30여개나 되는 이파리와 두 자반이 넘는 줄기로 무성하게 자라났다.
보살핌에 대한 그 보답을 지켜보면서, 식물은 우주에 뿌리를 내린 감정이 있는 생명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음....역시...
Es war ein sehr heißer Tag, und der Wein vermochte ihn aus irgendeinem unerklärlichen Grund erquicken. Die Schafe waren am Ortseingang, im Stall seiner neuen
Freunde, gur aufgehoben. Er kannte überhaupt eine Menge Leute in dieser Gegend, und darum reiste er auch so gerne. Man konnte immer wieder neue
Freundschaften schließen und mußte nicht Tag für Tag mit denselben Leuten auskommen. Wenn man, wie im Seminar, immer dieselben Menschen um sich hat,
dann lassen wir sie zu einem festen Teil unseres Lebens werden. Und wenn sie dann ein fester Teil davon geworden sind, wollen sie unser Leben verändern. Und
wenn wir dann nicht so werden, wie sie es erwarten, sind sie enttäuscht. Denn alle Menschen haben immer genaue Vorstellungen davon, wie wir unser Leben am
besten zu leben haben. Doch nie wissen sie selber, wie sie ihr eigenes Leben am besten anpacken sollen. Wie jene Traumdeuterin, die nicht fähig war, die Träume
작업실엘 올라오려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도시락을 싸봤다... 도시락이래 봤자...밥도 반찬도 다 허술하기 짝이 없지만... 전에 DSH 치러 다닐 때... 빵에 Salami와 Käse를 껴서 간단하게 역시나 허술한 샌드위치를 만들어 챙겨간적이 있긴 하지만... 오늘처럼 밥을 해서 도시락 통에 담아 나오기는 처음이다. 어떻게든 (절약도 하며) 먹고 살아야 한다는 생의 의지는 참으로도 절박한 것이어서... 나와 같이 게으른 아이가...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드리게 되니... 참으로 평생이 가도 하지 않을 것 같던 짓도 결국은 해보게 된다... 아침을 Müsli로 어설프게 떼우는 그 순간에... 부지런히 쌀을 씻어 밥솥에 앉히고, 부엌 찬장과 냉장고를 부시럭부시럭 뒤져서 도시락통이 될 만한 플라스틱통을 찾아 설겆이를 하고... 밥이 되기가 무섭게 자반볶음에다가 대충 슥슥 비벼서... 방금 전 씻어 놓은 락앤락 통에다 대충 눌러 담고... 반찬이라고는 딸랑 하나...며칠 전 담가 놓은 고추절임을 몇개 쑤셔담고 얼른 뚜껑 덮어 후다닥 집을 나섰다... 참... 뜨뜻한 국물용으로...부엌 서랍에 남아 뒹굴던 라면스프하나도 덤으로 챙겨넣고... 철이 드는지... 어느 날, 순간 문득문득...지난 일들이 새삼 떠올라...새롭게 기억되고...그와 함께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는 때가 있다. 그러면...그땐 그랬지....아 그랬었구나...하면서, 짜안...해 하는데... 오늘 이 허술한 도시락 뚜껑을 덮는 순간이 바로 그런 때였다. 갑자기 중학교 시절...고등학교 시절....매일같이 아침상을 마주하던 그 순간이 눈앞을 스쳤는데... 행여나 입맛 없을까봐 매일같이 아침마다 새로운 반찬을 만들어 내던... 엄마의 분주함 곁에는 항상 일찌감치 지어진 밥이 도시락통에 담겨... 그 반지르르한 밥알 하나하나들이 배를 내놓고 그 후끈한 열기를 식히고 있었다. 매일같이 당연한 듯...지나쳤던 그 순간과 씽크대 한켠에 가지런히 놓여 있던 밥통의 기억이... 오늘 아침...후다닥 도시락통 뚜껑을 덮다가 갑자기.... 열기가 덜 가신 도시락통 뚜껑을 덮으면, 나중에 안에 물기가 고여 혹여나 밥이 눅눅해져 맛이 없어질까봐... 일찌감치 밥을 지어 통에 담아 놓고 식히던 엄마의 마음을 문득 기억하게 되면서 다시 다가왔다... 순간 울컥해졌다...
이 날로 부터도 벌써 3년이 지났다...
그렇게 엄마의 마음을 깨닫게 되던 순간도 소중한 순간이고 소중한 기억이다... 그 이후로 좀 그럴듯한 도시락을 싸게 되기까지 여전히 긴 시간이 필요했지만...
사실 지금도 제대로된 도시락이라고는 하기 어렵다...
이제는 김밥도 쌀 줄 알고...몇 가지 반찬이 곁들여진 도시락을 여전히 아주 크게 마음을 먹고 1년에 한두번 싸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