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들은 인류 전체에 대하여 사랑을 외치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그와 반대하여 우리는 개별자로서만 개개인을 사랑할 수 있다고 타당한 주장을 한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하며, 사랑에 대한 그 말이 증오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덧붙이고 싶다. 인간은, 균형을 갈구하는 이 피조물은 자신의 등에 지워진 고통의 무게를 증오의 무게를 통해서 상쇄한다. 그러나 이 증오를 순수히 추상적인 원리들, 불의, 광신, 야만성에 집중시켜 보라! 아니면 당신이 인간의 원리 자체마저 혐오스럽게 생각하는데까지 이르렀다면, 인류 전체를 한번 증오해보라! 이런 증오는 너무 초인간적인 것이며,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분노를(인간은 이 분노의 힘이 한정되어 있음을 알고 있다) 가라앉히고자 할 때 결국 분노를 한 개인에게만 집중시킬 수 밖에 없는 법이다. 나의 공포는 거기에서 온다. 이제 제마넥은 언제든 자신이 변했음을 (게다가 그는 방금 의심스러우리만치 기민하게 이 점을 나에게 보여 주었다) 선언할 수 있고, 내게 용서를 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게 끔찍하게 여겨지는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무어라 말 할 것인가? 무어라 대답할 것인가? 그와 화해할 수 없다는 것을 그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화해한다면 나의 내적 균형이 일시에 깨져버리라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러면 내 내면의 저울의 한 쪽이 단번에 공중으로 날아가 버리리라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를 향한 나의 증오가 내 젊은 날에 닥친 고통의 무게와 평형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를 향한 나의 증오가 내 젊은 날에 닥친 고통의 무게와 평형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나는 그를 반드시 증오해야만 한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 밀란 쿤데라 '농담' 중에서...
어른들이 들으시면 그야말로 웃으실 이야기지만...그래도 굳이 이만큼의 나이에 나이를 들어가며 이야기 하자면, 그래도 나이를 먹어가며 나이든다는게 꽤 좋은 점도 있구나 새삼 느끼게 될때도 있다는 거다.
특히나 책을 읽다가 문득문득 가슴으로 이해하고... 깨닫고 정리하게 되는 때가 그래도 점점 더 많아졌는데...
희끗희끗한 백발의 작가들의 이야기...
혹 그 사람들이 젊은 시절에 썼다 할 지라도...다른 시대의 젊음...그 이야기들을 예전에는 그저 '아~멋있다' 혹은...막연히 '무언가 있는 거 같아' 라고...느끼는데 그쳤었다.
한살 두살 먹어가는 나이를 조금 더 깊이 느끼는 요즘은 내 과거들, 내 기억들을 다시 더듬어 보며 '아...그랬구나...그렇구나...그런거구나...' 하기 시작한다... '밀란 쿤데라는 자신의 책이 독자가 어느 날 우연히 자신의 책 한페이지를 넘겼을 때도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그런 책이었으면 좋겠대...'
이렇게 말해 준 친구 덕분에 옆에서 덩달아 나도 그의 책을 가끔씩 집어들기 시작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침대에 몸을 깊숙히 파묻고 읽기도 하고...
작가가 말 한대로 어느날 문득...책장의 다른 책들 사이에, 책상 위의 먼지 더미위에... 침대 머리맡에.. 화장대 위에...시시때때로 이리저리 뒹굴다 밀쳐진 그의 책을 무심코 집어들고는 기분 내키는대로 읽어 내리기도 하고... 이 문구를 읽으며 처음엔 다른 사람의 경우를 떠올리며 '아아...' 그랬었고...
그리고 다음번엔 나 자신을 떠올리며 '아아...' 그래야만 했었다.
가장 최근에 화내고 크게 증오했던게 언제였던가?
대학시절이었고, 그 대상은 바로 내게 밀란 쿤데라를 알려준 그 친구였다.
이 시절의 그 증오의 폭풍은 지금까지 길지않은 내 생애에서 가장 거대한 것이었고,
그 기간 또한 꽤나 길었던 덕분에 꽤나 오래 외롭고 힘들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 폭풍 덕분에, 이 긴 외로움 덕분에 당시 그와의 관계도 길어질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기대고 도망칠 곳은 그 곳 밖에 없었으므로...
현실은 기나긴 증오의 터널 속에 있었고, 그는 그 밖에 있었으므로...
그와의 전화통화, 그와의 편지만이 나를 그 현실 밖으로 데려다 놓았으므로...
'그 친구가 남자친구와 헤어졌다고, 너도 내게 이러는거야??'라는 그의 물음을 나는 당시에 유치함으로 단정지었고... 그리고 그 유치함에 몸서리쳤었다.
하지만 나와 그 친구와의 관계가 회복되어가며, 내가 증오의 터널을 빠져 나오며, 더이상 현실을 벗어나 굳이 그에게 달려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그 당시에는 나도 그도 정확히 알지 못했던 그 사실을 그는 무의식적으로 감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의 불안함.....
그가 현실의 내가 아닌 그의 이상 속의 나만을 사랑했다고...그렇게 투덜댔지만...
사실 나 자신도 그를 현실 속에서 사랑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고 인정하게 된다. 아무튼 그 폭풍의 시기동안에 난 말도 안되는 우스꽝스러운 일들을 많이 벌였었는데...
그 주요 등장인물 중 하나였던 다른 한 친구를 붙잡고...
'그 친구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모..그런 식으로 푸념하기도 했었다.
동조를 기대했던 내게 듣고 있던 친구가 했던 말은 고작 '너 아직도 화가 많이 나 있는 거 같아' 였다.
그때는 전혀 이해되지 않았던 그 한마디..그러나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 그 한마디에...난 내심 '고작 화가 난 거라고??' 이렇게 발끈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한마디가 지금까지도 그렇게 잊혀지지 않았던 것은...사실 그때도 그말이 정확하게 옳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단지 그 화를 인정하고 제대로 들여다 볼 자신이 없었을 뿐이지... 지금에 와서 그 화..분노의 대상을 정확히 짚고 넘어가자면, 그 또한 나 자신이었고...
루드빅이 전인류에 대한 증오를 인간은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증오의 대상은 한 개인에게 집중시킨다라고 했다면....(그의 증오와 분노는 사실상 시대에의 분노였으므로...동시에 스스로에 대한 분노이기도 했지만....)
당시에 나는 당장의 설계 마감의 문제에 앞서서, 설계를 풀어나가는데에 대한 스스로의 역량에 대한 회의, 작업 기타 것들에 맞물린 그 친구와의 삐걱임에 어쩔줄 모르는 자신에게 많이 화가 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그렇게 인정하고 화내고 분노할 용기가 없었던 나는...그 모든 것을 대신 쉽게 그 친구에게 떠넘기고 분노를 집중시켰었다.
루드빅이 시대와...농담을 했던 스스로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제마넥에게 다 떠넘겼던 것 처럼... 그 후로도 내가 그렇게 화가 났었다는 걸 정확히 알지 못한채...
어쨌든 계속 그런식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은 깨달았기 때문에...
적절히 화가 누그러진 시점에 나는 그 친구와 암묵적인 화해를 했다...
딱 그만큼(그나마 다행스럽긴 했지만)...딱 그만큼만의 평정심을 찾았었나보다...
그 후에도 나는 어느 술자리에서 그 친구에게
'사실 너와의 관계에 있어 예전같은 그런 신뢰를 회복하기는 힘들것 같아'라고 단호히 잘라 말했고,
그 친구는 슬퍼했었다.
그만큼의 평정심이 가져온 결과였고, 그것이 우리가 졸업할 때 까지의 상태였다. 올여름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를 더듬어보며...
재회의 반가움 사이에 끼어들었던 거리감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본다.
그것이 우리가 떨어져 있었던 시간만큼 다르게 성장한 데서 온 거리감이었는지...
내 안에 여전히 더 달려야 할 평정의 구간이 남아있는 것인지...더듬어 본다...
이전에 쓴 글을 통해 나의 20대를 다시 들여다 본다...
무어가 그렇게 극단적이었나...싶다...
만으로도 이제 30대에 접어들어 의료보험비도 더 내야하고...은행 통장 사용료도 꼬박꼬박 물어야 하는 지금의 나는...
이제 조금은 적당히 화를 낸다...
그렇지만...여전히 화를 내는 일에 서툴고...수습도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