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퀸은 컬럼비아 대학교 도서관에서 스틸먼의 책을 읽는 것으로 오전 시간을 보냈다. 아침 일찍 도서관을 찾은 그는 문이 열리자마자 맨 먼저 안으로 들어갔고, 대리석 홀의 정적 속에서 마치 망각의 지하실로 들어가도록 허락이라도 받은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졌다. 책상 뒤에서 꾸벅꾸벅 졸고있는 직원에게 졸업생 카드를 내보인 뒤 그는 서가에서 책을 뽑아 가지고 3층으로 올라가 끽연실의 녹색 가죽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창밖의 눈부신 5월 아침이 야외를 무작정 걸어보라고 유혹하는 것 같았지만, 퀸은 그런 생각을 떨쳐버린 뒤 의자를 돌려 창을 등지고 앉아 책을 펼쳤다. * 폴 오스터 '뉴욕 3부작 -유리의 도시' 중에서...
어제 아침 Köln에서 Giessen 사이 지역 구간 열차에서 이 부분을 읽고 있었던 것 같다. 올 들어 좀 잦았던 혼자 하는 기차여행으로 '여행길엔 역시나 한글책이 최고더라'는 노하우가 생겨...
새벽에 이 책을 작은 가방에 틈새를 비집고 밀어넣었다...
혹시나 한글에 허기질까 뒤셀도르프까지 챙겨가지고 온 유일한 한글 소설이니까... 이미 한 해 전쯤에 한 번 읽었던 소설을 한참을 아무 생각없이 무작정 읽어 내려 몇 장을 넘기고선... 위의 새로 시작된 장의 첫머리를 읽으며...비로소 아...한다...
'지금 만나러 가는 친구가 뉴욕에서 왔었지... 그 친구는 정말로 이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지...' 책을 읽으면서...특히나 들어가는 나이와 함께 책을 읽으면서는... 이야기를, 등장인물들을 점점 더 나에...삶에 이입해 이해한다고 느꼈었는데... 문득 그 모든 공감이 사실 상당부분 제한되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글들 사이에 떠돌던 공간...장소들이... 그렇게 구체적이고 또렷해지는 게 순간 당황스러워지는 거다. 아마 나는 그동안 내가 믿고 있던 그 거리만큼만...공감하고 있었나보다...
블로그 이사를 하는 중이다... 자주 들르는 블로그의 주인장께서도 얼마전 이사를 완료하셨다는데... 그분 말씀이... 실제 공간에서든 가상 공간에서든...이사를 하다보면 늘 버리게 생긴다는 거다... 지난 네이버 블로그 글 목록을 열어 보고서는... 나 역시도 그렇겠구나 생각하면서...나즈막히 한숨을 내어쉰다... 이미 1년도 이전 뒤셀도르프에서 지내던 시절 8월의 날씨 좋은 어느 주말... 왕복 9시간을 넘게 걸려 RE를 타고 프랑크푸르트로 친구를 만나러 내려가던 날이었다... 니체의 영원한 회귀라는 것 상황들... 사건들을... 좀더 보편화 시키면 일리 있을 수도 있겠다...한다... 그 눈부시게 화창하던 어느 여름 날 기차 안에서 느낀 갑작스레 '거리'에 대해 인지하면서 느꼈던 당혹감을... 1년도 더 지난 시간... 요즘 겨울 날...다른 이유로 인해...다시 느낀다... 여전히 당황하며...'거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언제 또 다시 기습할 지 모를 그 당혹감... 적당한 거리와 적당한 긴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