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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12.04 2005.12.04_처음으로 도시락 싸 본 날...

작업실엘 올라오려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도시락을 싸봤다...
도시락이래 봤자...밥도 반찬도 다 허술하기 짝이 없지만...
전에 DSH 치러 다닐 때... 빵에 Salami와 Käse를 껴서 간단하게 역시나 허술한 샌드위치를 만들어 챙겨간적이 있긴 하지만...
오늘처럼 밥을 해서 도시락 통에 담아 나오기는 처음이다.
어떻게든 (절약도 하며) 먹고 살아야 한다는 생의 의지는 참으로도 절박한 것이어서...
나와 같이 게으른 아이가...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드리게 되니...
참으로 평생이 가도 하지 않을 것 같던 짓도 결국은 해보게 된다...

아침을 Müsli로 어설프게 떼우는 그 순간에...
부지런히 쌀을 씻어 밥솥에 앉히고, 부엌 찬장과 냉장고를 부시럭부시럭 뒤져서 도시락통이 될 만한 플라스틱통을 찾아 설겆이를 하고...
밥이 되기가 무섭게 자반볶음에다가 대충 슥슥 비벼서... 
방금 전 씻어 놓은 락앤락 통에다 대충 눌러 담고...
반찬이라고는 딸랑 하나...며칠 전 담가 놓은 고추절임을 몇개 쑤셔담고 얼른 뚜껑 덮어 후다닥 집을 나섰다...
참... 뜨뜻한 국물용으로...부엌 서랍에 남아 뒹굴던 라면스프하나도 덤으로 챙겨넣고...

철이 드는지...
어느 날, 순간 문득문득...지난 일들이 새삼 떠올라...새롭게 기억되고...그와 함께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는 때가 있다.
그러면...그땐 그랬지....아 그랬었구나...하면서, 짜안...해 하는데...
오늘 이 허술한 도시락 뚜껑을 덮는 순간이 바로 그런 때였다.

갑자기 중학교 시절...고등학교 시절....매일같이 아침상을 마주하던 그 순간이 눈앞을 스쳤는데...
행여나 입맛 없을까봐 매일같이 아침마다 새로운 반찬을 만들어 내던...
엄마의 분주함 곁에는 항상 일찌감치 지어진 밥이 도시락통에 담겨...
그 반지르르한 밥알 하나하나들이 배를 내놓고 그 후끈한 열기를 식히고 있었다.

매일같이 당연한 듯...지나쳤던 그 순간과 씽크대 한켠에 가지런히 놓여 있던 밥통의 기억이...
오늘 아침...후다닥 도시락통 뚜껑을 덮다가 갑자기....
열기가 덜 가신 도시락통 뚜껑을 덮으면, 나중에 안에 물기가 고여 혹여나 밥이 눅눅해져 맛이 없어질까봐...
일찌감치 밥을 지어 통에 담아 놓고 식히던 엄마의 마음을 문득 기억하게 되면서 다시 다가왔다...

순간 울컥해졌다...  

Posted by G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