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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0.26 2010.10.25_성선설을 의심하며...
맹자가 성선설을 주장하기 위해 내세웠던 논리 가운데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아무래도 '우물로 들어가려는 아이'에 대한 비유일 것이다.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어떤 사람이 막 우물로 들어가려는 어린아이를 문득 발견한다면 그에게는 당연히 두렵고도 측은한 마음이 일 것이다." 즉 우물로 들어가려는 아이를 본 낯선 사람의 마음에 '측은한 마음'이 드는 까닭은 사람의 마음마다 아이를 걱정하는 '착한 마음'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종오는 이 주장을 반박한다. 그 문장은 분명히 "출척측은(怵惕惻隱)이라는 네 글자를 사용했다"면서, 왜 측은말을 말하고 출척은 말하지 않을까라고 묻는다. 거기에 논리상의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종오의 논박에 의하면 '측은'한 마음이 있기전에 먼저 '출척'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려움은 '어린아이'가 있기전에 내가 먼저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고 한다. "우선 내가 있고서야 비로소 아이가 있는 것이다. 즉 내가 죽음을 두려워하니까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우물에 빠질 수도 있고 이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을 터이니 두려운 마음이 생길 리가 없다.내가 없으면 곧 어린 아이도 없고, '출척'의 마음이 없으면 '측은'의 마음도 없다."

계속되는 설명에 따르면 어린아이는 '나'의 확대형이고 측은은 출척의 확대형으로 맹자가 사람들에게 측은지심(惻隱之心)을 확대하라고 가르친 것은 훌륭한 일이지만, "측은지심은 출척지심을 확대한 것이라는 말을 삼갔기 때문에 후세 사람들이 오해를 했다"고 한다. 송대 유학자들은 이 점을 살펴보지 못한 채 측은지심을 인성의 근본으로 삼았기 때문에 주자학은 봉건적 윤리만 남기고 인간의 욕망을 버리는데 중점을 두게 되었던 것이다.

또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맹자는 "어린 아이 가운데 자신의 부모를 사랑할 줄 모르는 애가 없고, 자라서는 형을 공경할 줄 모르는 애가 없다"고 말하지만 이종오는 그 말에서도 적잖은 모순을 발견하다. "만일 엄마 손에 떡이 있는 것을 보면 아이는 손을 뻗어 떡을 먹으려고 덤빌 것이다. 엄마가 떡을 아이에게 주지 않고 자기 잆속에 넣는다면 아이는 손을 뻗어 엄마 잆고에 있는 떡을 꺼내 냉큼 자신의 입으로 가져갈 것이다. 과연 이와 같은 현상을 아이가 부모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린 아이가 엄마 품속에서 무언가를 먹고 있을 때 형이 다가오면 그 아이는 형을 밀어내거나 때리려고 할 것이다. 이런 행동이 과연 형을 공경하는 모습일까. 전 세계 어린 아이 중 이와 같지 않은 아이는 한명도 없을 것이다."

어린 아이였을 때 "공자도 어미 입속에 있는 떡을 뺏어 먹었을 것이고, 나(이종오)와 어린 아이가 동시에 우물에 들어가려고 할 경우 공자도 오직 두려움만이 있을 뿐 측은지심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종오의 무선무악설이 귀착하는 곳은 여러번 강조됐던 '나()'이다.

"엄마와 형을 비교하면 엄마가 나에게 더 가깝고 소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린아이는 엄마를 더 사랑한다. 조금 더 커서 이웃 사람과 만날 때 곧 그들과 형을비교해 형이 자신과 더 가깝다고 느끼기 때문에 당연히 형을 더 사랑하는 것이다.여기서 좀 더 범위를 확장해 다른 지역으로 갔을 때를 상정해 보자. 타향에 가면 이웃 사람을 더 사랑하고, 외국에 가면 자기 나라 사람을 더 사랑하게 된다. 여기에는 일정한 법칙이 작용하고 있다. 그 법칙은 대상이 나와 거리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애정이 더 돈독해진다는 것이다. 대상에 대한 애정의 농도는 자신으로부터의 원근에 반비례하는 셈이다. 이를 통해 부모를 사랑하고 형을 공경한다는 맹자의 말은 사실 이면에 '나'를 숨기고 설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위인(爲人: 사람의 됨됨이)의 논리인 측은(惻隱)보다 위아(爲我: 스스로의 이익을 쫓아 행동함)의 논리인 출척(怵惕: 두려워 조심함)을 중시하라고 그는 말한다. 

*장정일의 공부...'전복과 역설의 뻔뻔함과 음융함' 중에서... 
Posted by G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