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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1.03 2009.01.03_촘스키 vs 포스트모더니즘



1970년대 말과 80년대 초 사이에 프랑스에서 시작된 포스트모더니즘이 미국의 사회과학과 인문학 분야에 폭풍처럼 밀려들었다. 촘스키는 이 사조에 대해 강한 부정적 견해를 구축했다. 그의 견해는 대학에서 지식인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 학자들의 일이 왜 대부분 하찮거나 자기만족적인가에 대한 그의 생각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그렇다면 촘스키의 학문이, 텍스트에 대한 구조주의적 접근 방식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뿐 아니라 구조주의, 후기 구조주의, 시학, 문학에 대한 언어학적 분석이나 언어학적 논증의 문제를 다루는 다양한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에게까지 여전히 중요한 정보적 재원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북미에서 언어학이 아닌 언어 연구는 소쉬르 이후의 모든 프랑스 이론가에 의해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1980년대 초 무렵, 프랑스 언어 이론은 엄청나게 팽창하고 있었다. 보드리야르, 부르디외, 데리다, 들뢰즈, 푸코, 가타리, 라캉, 리오타르 등의 인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물론 바르트, 토도로프, 크리스테바 등은 여전히 학계의 극단적 찬반 논쟁을 불러 일으키는 논쟁가로 남아 있었지만 새로운 자리를 점유하지는 못했다. 위의 사상가들은 이론의 방면에서 새로운 스타로 발돋움했고, 비록 다른 사상가들의 연구도 문학과 언어 연구의 목록에 포함되긴 했지만, 그래도 학계의 주목을 한몸에 받은 사람들은 바로 이들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가들이었다.
이론가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 대해 거의 의견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 문제는 가령 포스트모던 건축과 포스트모던 시학과 같이, 분야간의 이동이 있으면 더욱 복잡해진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촘스키의 정의는 다른 많은 학자들이 사용하는 정의와 일치하지 않았고, 따라서 긴장의 원인이 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과 그 이론가들을 촘스키와 관련하여 이해하는데 가장 도움을 주는 사람은 바로 크리스토퍼 노리스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운동 전체에 대한, 그리고 보드리야르, 드만, 데리다, 리오타르 등의 작품에 대한 노리스의 상세한 비평은 말하자면, 촘스키의 다소 극적인 평가를 조심스럽고 논리적으로 풀어쓴 것이다. 특히 장 보드리야르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노리스의 비평은 촘스키의 입장을 잘 대변하고 있다. 노리스는 '무비판적 이론: 포스트모더니즘, 지식인들, 그리고 걸프전'(1992)을 통해, 보드리야르의 '걸프전은 일어나지 않았다'라는 논문에서 발견되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과도함과 오류를 겨냥하여 절제된 논박을 전개하고 있다.

보드리야르의 주장은 이것이다. 우리는 이제 순전히 환상과 허구로 이루어진 외관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 진실은 계몽적 이성과 그런 류의 낡은 사상과 함께 사라지고 없다는 것, 현실은 오늘날 배가된 '시뮬라크라', 즉 현실-효과의 작용을 통해 혹은 그 작용에 의해 규정된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거짓된 외관만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기 때문에 인식론적 근거로든 사회.정치적인 근거로든 '거짓된' 모습을 비판하는 것의 무의미하다는 것, 따라서 우리가 진리라고 주장하던 낡은 패러다임이 더 이상 최소한의 역동적인 힘, 다시 말해 설득력이나 수사적인 힘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그에 집착하기보다는 소위 포스트모던 조건과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 등이다.

촘스키가 보드리야르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무슨 말을 했을지 상상하기는 쉽다. 그의 데카르트주의와 사회적, 개인적 책임에 대한 관심, 그리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편, 이를테면 걸프전의 와중에 연합군이 폭격세례를 퍼부었던 바그다드 주민들의 편에 서서 투쟁하려는 그의 사명의식을 한번 생각해 보가.
노리스는 보드리야르의 사상을 '터무니없는 이론'에 근거한 '황당무계한 사상'이라고 비난하면서, 보드리야르는 포스트모던 사상의 대변자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을 분명히 밝혔다. 또 그는 보드리야르를 극단주의자 범주에 귀속시키면서 오히려 데리다를 포스트모더니즘적 선명함의 모범으로 규정짓는다. 노리스는 데리다가 "유쾌한 수사학을 동원하여 실재와 진리와 계몽적 비판의 지배에 종말을 고하는, 간편한 포스트모더니즘 계보에 속한다"는 일반적 인식을 거부하면서, 오히려 데리다의 글이 "인식록적 질문과 함께 윤리적 해석 능력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며, 단지 그의 글이 참조문, 의도, 텍스트의 권위, 올바른 텍스트 읽기, 저자의 권위 등에 직접적으로 호소하기 때문에 그 문제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데리다는 "오로지 이성의 힘으로, 상대방의 담론에 존재하는 맹점들에 면밀히 주목하면서, 그리고 절제된 논쟁방식으로 상대방의 공격을 그들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전환시키는 탁월 한 기술을 사용하여 논쟁을 이끌어 나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리스는 포스트모더니즘이 "관련 텍스트들을 먼저 검토하지 않거나, 충분한 시간과 흥미를 가지고 이들 서적의 복잡한 철학적 전사, 그 속에 감춰진 공리들, 전문화된 논쟁방식 등을 파악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거부당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그는 또 이렇게 덧붙인다. "오해가 발생한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해석방법이 판이한 이론가들, 다시 말해 아주 다른 동기에서 비롯된 흥미와 우선순위를 가진 미국과 영국의 이론가들이 포스트모더니즘의 글을 열정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촘스키는 보드리야르가 포스트모더니즘의 시금석이고, 그 결과 그의 저술도 가치가 있다는 노리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 점을 제외한다면 두 사람의 의견은 대개 일치한다. 촘스키는 자신과 노리스가 '같은 편'에 있다고 말하면서 "보드리야르에 관해서는 노리스의 비평을 통해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1995.03.31. 편지). 노리스는'무비판적 이론: 포스트모더니즘, 지식인들, 그리고 걸프전'에서 "촘스키의 주장에서 발산되는 뛰어난 설득력은 이성적 근거에 마음을 열어둔 독자들에게 그의 주장이 쉽고 분명하게 보이도록 만든다"고 쓰고 있다. 사실 촘스키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전문가라고 자처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포스트모더니즘 사조 전체를 무시할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주류 언어학이나 정치적 저항의 영역은 문학연구처럼 포스트모더니즘에 심각한 영향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스트모더니즘은 특유의 현란한 언어로 촘스키의 감각을 자극하는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다. 그는 인정한다. "적어도 데리다와 라캉은 읽어야 합니다. 나 자신도 심리분석가들을 위한 강연에 기초한 논문에서 라캉의 초기 작품을 인용한 적이 있고, 이것은 '규칙과 표상'에 실려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 관해서 언급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을 진지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얼마되지는 않지만 적어도 내가 그들의 저서를 통해 본 바로는 그렇습니다. 나는 크리스테바를 한번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녀는 약 20여 년 전에 나를 만나기 위해 연구실로 왔었지요. 그때 그녀는 마치 광적인 마오쩌뚱주위자 같았습니다. 나는 더 이상 그녀의 글을 읽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 못했습니다"(1995.03.31 편지)

촘스키가 성공적으로 사귄 유일한 포스트모던 사상가는 미쉘 푸코이다. 푸코는 사후에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적 인물로 부상했다. 1971년 촘스키와 푸코는 네델란드의 공영방송에 함께 출연했다. 비록 촘스키가 포스트모더니즘의 역사적 상대주의, 자아도취, 이기적인 언어의 러다이티즘 등을 들어 푸코의 견해에 경멸감을 드러냈지만, 푸코는 촘스키와의 대면에서 비교적 상처를 입지 않았다. 촘스키와 푸코는 정의와 인간의 본성이 역사적으로 우발적인가의 문제를 제외하고는 종종 의기투합했다. 노리스의 말을 들어보자.

푸코와 촘스키는 어느 정도 의견의 일치를 보인다. 촘스키는 다음과 같은 주장에 동의한다. 즉 우리의 진리관이 넓게 보면 내재화된 선입견의 산물이라는 것, 사람들은 피할 수 없는 조건 하에서 특정한 사실들을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이는 단지 그 사실들이 사회적 합의를 이룬, 또는 전문화된 기존의 믿음체계에 일치하기 때문이라는 것, 검열은 종종 '위로부터' 가해지기 보다는 외적이고 강제적인 권력행사와는 무관하게 스스로 부과한 원칙과 규제를 통해 행해진다는 것, 촘스키 자신의 표현대로, '진실의 정치 경제학'에 이바지 한다는 거짓 선전에 연루되어 있긴 하지만, '정직한', '올바른 생각을 가진' 개인들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러한 거짓이나 권력의 남용에 대한 저항은 그 시대에 소통되고 이용가능한 정보적 출처인 '담론체계'에 어느 정도 의존한다는 것 등이다.

촘스키는 대부분의 정치학 이론이 내포하는 사소하고 자기만족적인 속성을 강조하면서도, 역사연구에 이바지한 미쉘 푸코의 공로를 인정한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와 마찬가지로 역사에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지식인들이 자신의 경력과 권력욕 때문에 저지르는 위선적인 거짓행위만 피할 수 있다면 말입니다. 당신이 언급한 푸코를 예로 들어봅시다. 전후 파리의 괴상한 문화에서 그가 극단적인 모습을 취하게 되었다는 점과 지식인이라는 괴상한 집단의 존경심을 유발시키는 데 필요한 현학적인 틀을 사용했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우리는 푸코의 글에서 흥미로운 통찰력과 관찰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푸코는 적어도 이러한 군더더기를 제거하면 무언가 남는게 있다는 점에서 여타 파리의 지식인들과는 다른 특이한 존재입니다.

로버트 바스키 '촘스키, 끝없는 도전' 중에서

Posted by G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