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되자 CDO가 부도가 날 경우 투자자들을 보호할 또 다른 금융상품인 CDS(credit default swap, 신용부도 스왑)도 나왔다.
이외에도 현대식 금융이라는 이름 아래 상상의 범위를 초월하는 온갖 종류의 금융 상품이 발명되었다.
...(중략) 그러나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동일한 실물자산, 즉 최초로 주택담보 대출에서 담보로 사용되었던 집들과 그 집의 소유자들의 경제활동들이 새로운 자산을 '파생'시키기 위해 반복해서 사용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리 천재적인 금융 상품을 만들어 놓아도 결국 이 자산들이 기대한 만큼의 수익을 낼 수 있는지 여부는 최초로 담보 대출을 했던 그 수십만명의 노동자와 중소기업가들이 대출융자금을 꼬박꼬박 상환하는지에 달려 있다.
결국 이른바 금융 혁신의 결과는 실물 자산이라는 기초 위에 금융 자산이라는 빌딩을 끝없이 높게 쌓아 올린 끝에 전체 건물이 흔들거리는 꼴이다.
2008년 11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경제학 분야에서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런던 경제대학을 방문했다. 당시 전세계를 삼켜버린 금융위기에 관해 루이스 가리카노 교수가 발표를 하고 난 후 여왕이 물었다. "왜 아무도 이런 일을 예상을 못했지요?" 2008년 가을 금융위기가 터진 이후 모든 사람이 묻고 싶은 말을 여왕폐하께서 하신 것이다.
...(중략)
여왕의 질문에 관한 소식을 들은 영국 아카데미는 2009년 6월 17일 학계, 금융계, 정부 부처 등에서 최고로 꼽히는 경제학자들을 모아 놓고 회의를 했다. 이 회의 결과를 정리한 편지는 2009년 7월 22일 여왕에게 전달되었다. 편지는 런던 경제대학의 저명한 경제학 교수 팀 베슬리와 영국 정부의 역사에 대한 권위자 피터 헤네시가 공동으로 작성했다.
편지에서 베슬리와 헤네시 교수는 "경제학자들 개개인은 유능하고, 나름대로 자기가 맡은 일은 잘 해내고들 있었지만 금융위기 직전에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우를 범했다"고 설명했다. 그들은 또 "영국을 비롯해서 세계적으로 수많은 유능한 사람들이 집단적 상상력을 동원해서 시스템 전체에 끼치는 리스크를 이해해야 하는데 그에 실패했다"고 반성했다.
집단적 상상력의 실패?
...(중략) 그것이 집단적이 되었든 다른 종류가 되었든 상상력 같은 개념이 경제학의 주류를 이루는 합리주의적 담론에 낄 자리가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영국 경제학계에서 가장 위대하신 학자들이 모여서 머리를 맞댄 끝에 결국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자신들도 잘 모르겠다고 인정한 셈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 편지의 내용은 사태의 심각성을 호도한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자기들의 전문 분야에 한정된 일만 열심히 하다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한 세기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재난에 희생된 무고한 기술자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30여 년 동안 경제학자들은 2008년 위기를 불러올 환경을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사실 그들은 1982년 제3세계 채무위기, 1995년 멕시코 페소 위기,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 1998년 러시아 위기 등 1980년대 초 이후 크고 작은 수십개의 금융위기에도 책임이 있다. 금융규제 철폐와 무제한적 단기 이윤추구를 이론적으로 정당화해 준 것이 바로 그들이다.
더 넓게 생각하면 그들은 경제 성장의 둔화, 고용불안과 불평등 악화ㅡ 그리고 지난 30년간 세계를 괴롭혀온 잦은 금융 위기를 불러온 정책을 정당화하는 이론을 주장해왔다. 그에 더해 그들은 개발도상국의 장기발전 전망을 약화시켰다. 부자 나라에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새로운 기술의 위력을 과대평가하도록 유도했고, 사람들의 생활을 점점 더 불안정하게 만들었으며 경제에 대한 국가의 통제력이 상실되는 현상을 모르는 체하도록 했고, 탈산업화 현상에 안주하도록 만들었다. 게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할만한 경제현상들, 즉 점점 심화되는 불평등, 지나치게 높은 경영자들의 보수, 가난한 사람들이 극심한 빈곤 등은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의 본성과 각자 생산 기여도에 따라 보상받을 필요성을 감안할 때 모두 피할 수 없는 현상일 뿐이라고 주장해왔다.
* 장하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중에서
어느 해이던가...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그랬다...
가진 것 없는 집 자식이라면, 아들은 무조건 경영 혹은 경제를 공부해야 하고, 딸은 불문학 정도만 전공해서 적당히 우아하하다가 결혼을 잘하는 것이 최선이며...
많은 아줌마, 아저씨들이 무작정 장사라는 것을 하기 때문에 그들이 망할 수 밖에 없다 했다...
경제나 경영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하는 경제활동의 결말은 이미 결정되어진 것이라는 것이었다...
우선...독설이다 싶을만큼 냉소적인 친구의 말이 놀라웠고...
세월에 변한 것인지...내가 몰랐던 것인지...처음 보는 친구의 모습에 놀랐고...
경제라고는 관심도 없고, 아는 바도 없었지만..."글쎄...그건 아니지 않나..."
막연히 강하게 거부감이 일었지만...
(다행히 아직까지도 망하지는 않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힘겨워하시는 엄마, 아빠가 그 많은 아줌마, 아저씨 중에 한 사람들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시장이 자유로워 보이는 것은 단지 우리가 그 시장의 바탕에 깔려 있는 여러 규제를 당연한 것으로 여겨 규제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언제나 시장에 개입하고 있고, 자유 시장론자들도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적이다. 객관적으로 규정된 자유시장이 존재한다는 신화에서 벗어나는 것이야 말로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주주들이 법적으로는 기업의 주인일지는 몰라도 그들은 기업의 이해 당사자 중에서 가장 손쉽게 빠져나갈 수 있고, 따라서 기업의 장기 전망에 가장 관심이 없는 집단이다.
...격차는 개인의 능력 차라기보다는 시스템의 차이에서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은 더 나은 기술, 더 나은 조직, 더 나은 제도와 물리적 인프라를 가진 경제 환경에서 살기에 그런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시장의 정치성과 개인 생산성의 집단적 성격을 이해해야만 더 공평한 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 결국엔 시스템의 문제라는 사실을 독일에서 일하며 자주 느낀다...
변화를 인식할 때 우리는 가장 최근의 것을 가장 혁신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과거를 돌아볼 때 망원경을 거꾸로 들고 보아서는 안된다.
이기심은 대부분의 인간이 지닌 가장 강력한 본성 중의 하나이지만, 유일한 본성도 아니고 많은 경우 인간 행동의 가장 중요한 동기도 아니다.
지난 30년 사이에 물가 변동을 잡았다는 사실에 지나치게 흥분해서 우리는 같은 기간 동안 전세계 여러 나라가 겪어온 극도로 불안정한 경제 상황을 못본척 했다.
인플레이션에만 지나치게 집착하면서 우리는 완전 고용이나 경제 성장 같은 중요한 문제에 충분히 신경쓰지 못햇다. '노동시장 유연성'이라는 미명 아래 고용이 불안정해지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불안해졌다.
문제는 물가 안정이 경제 안정도를 측정하는 여러 지표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사실 물가 안정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제 안정의 지표도 아니다. 사람들의 삶을 흔드는 가장 큰 사건은 일자리를 잃거나, 하는 일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 혹은 금융 위기가 몰아닥쳐 집을 압류당하는 것들이다.
신자유주의 정책 패키지로도 알려진 자유시장 정책 패키지 일련의 정책들은 낮은 인플레이션, 자유로운 자본 이동, 그리고 높은 고용 불안정성 등을 중시한다. 기본적으로 금융 자산 보유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이 정책들이 입안된 것이다.
* 결국 잡지도 못했지만, 국민들의 귀를 솔깃하게 하기는 했던 물가정책의 허와 실이 바로 여기에 있었구나...한다...
07. 자유시장정책으로 부자가 된 나라는 거의 없다
점점 더 많은 자본이 '초국화'되어 가는 추세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초국적 기업들은 국적이 없는 기업이 되기보다는 사실상 해외 지사를 둔 '단일 국적 기업'으로 남아 있다.
...이 말은 초국적 기업이 가진 혜택의 대부분이 본국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기업의 태도와 행동을 결정하는 요인이 국적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본의 국적을 무시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도덕적, 역사적 이유들도 중요하지만 초국적 기업들이 자국 편향이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경제적인 것이다. 기업의 핵심 역량을 국경 너머로 옮기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기계를 해외로 옮기는 것은 쉽다. 그러나 숙련된 노동자나 경여자를 옮기는 데에는 비용이 훨씬 많이 든다. 업무 관행이나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다른 나라로 이전하는 것은 그보다 더 어렵다.
...이런 모든 이유에서 높은 수준의 인적, 조직적 역량과 적절한 제도적 여건이 필요한 고도의 기업 활동은 자국에 남게 된다.
기업에 자국 편향성이 있다고 해서 외국인 투자를 제한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 나올 수도 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외국인 투자가 많은 경우 새로운 생산 시설은 설립하는 그린필드 투자가 아니라 기존 기업을 인수하는 브라운필드 투자라는 사실이다.
이 말은 외국인 직접 투자의 많은 부분이 생산이나 고용을 새로 창조해 낸 것이 아니라 기존 기업의 경영권 인수에 집중되었다는 의미이다.
최근 들어 사모펀드들이 기업 인수 부문에서 점점 더 활동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이 펀드들이 장기적인 기업 발전을 계획하고 회사를 인수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구조 조정을 통해 수익성을 높인 다음 3~5년 사이에 되팔 목적으로 기업을 인수하는 것이 관례이다.
...최악의 경우 사모펀드는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자산 수탈'을 목적으로 기업을 살 때도 있다.
동종 업계에서 이미 영업하고 있는 기업이 인수를 했다고 해서 모두 피인수 기업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발전시키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그 의도는 인수한 회사를 발전시키려는 게 아니라 그들의 축척해 놓은 기술을 이용하려는 것이었다.
*이미 이 때문에 한국의 기업과 자본이 얼마나 피해를 보았으며, 또 보고 있는가...
총생산에서 제조업 생산이 차지하는 비율이 줄어든 것은 대부분 제조업에서 생산되는 제품들의 가격이 서비스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아졌기 때문이지 제조업 생산량의 절대량이 줄어서가 아니다. 이렇게 제조업 생산품의 가격이 낮아진 것은 제조업 분야의 생산성이 서비스업 분야보다 더 빨리 증가하기 때문이다.
개발도상국들이 산업화 단계를 건너뛰고 탈산업화 단계에 곧바로 진입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허상에 불과하다. 서비스 산업은 생산성이 증가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되기 힘들다.
* 2008년 금융위기 타격이 영국과 독일, 양국에 미쳤던 영향의 차이만 봐도 제조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평균 소득으로 따져 볼 때, 미국인들은 룩셈부르크를 제외한 다른 선진국 국민들에 비해 재화와 서비스를 살 수 있는 구매력이 가장 높다. 그러나 소득분배가 극도로 불균등한 미국과 상대적으로 소득 분배가 고른 다른 선진국을 이렇게 평균 소득만으로 비교해서는 사람들의 삶을 제대로 짐작하기가 어렵다. 이 불균등한 소득 분배 현상은 미국의 건강 지표가 좋지 않고 범죄율이 높은 원인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게다가 미국이 다른 선진국보다 같은 돈으로 더 많은 물건과 서비스를 살 수 있는 이유는 이민이 많고 고용 조건이 열악한 덕에 상대적으로 서비스가 싸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미국인들은 유럽인들에 비해 일을 훨씬 더 오래 한다. 같은 시간을 일하는 것으로 계산하면 미국인들보다 유럽인들의 구매력이 더 높아진다. 미국인들처럼 여가 시간보다는 물건을 많이 갖는 쪽이 더 나은 삶이냐, 유럽인들처럼 물건을 더 살 돈 보다는 여가 시간을 확보하는 쪽이 더 나은 삶이냐 하는 것은 사람에 따라 의견이 다르겠지만, 적어도 미국이 다른 부자 나라들에 비해 생활 수준이 단연 더 높은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한 나라의 평균 소득으로 구매할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의 양을 따지는 것 보다 더 넒은 의미에서 생활수준은 측정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나면, 소위 말하는 미국의 우월성은 상당히 빛을 잃고 만다.
아프리카의 발목을 잡는다고 하는 구조적 요인들 중 대부분은 오늘날 부자가 된 나라들도 가지고 있던 문제들이다.
나쁜 기후, 내륙 국가, 풍부한 천연자원, 민족 분쟁, 바람직하지 않은 문화 등...
이런 구조적 문제가 아프리카의 발전을 가로막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다만 이런 장애 요인들이 낳는 문제를 처리할 만한 기술적, 제도적, 조직적 기술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기업들이 결국 실패로 끝나는 결정을 가끔 내리는 것처럼 유망주를 선별하는데 성적이 좋은 정부들마저도 항상 옳은 선택만을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문제는 정부가 유망주를 선별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아니다. 정부는 그럴 능력이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선택의 승률을 높이는 것이다.
고르는 주체가 기업이 되었든 정부가 되었든 유망주는 항상 선별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1980년대 이래로 우리는 부자들에게 파이에서 더 큰 조각을 주면 그들이 더 많은 부를 창출해서 장기적으로 파이를 더욱 키울 것이라고 믿었다.
문제는 이른바 투자자의 손에 소득을 몰아주는 것만으로는 더 높은 경제 성장을 이룰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돈이 손에 들어와도 그 투자자가 투자를 하지 않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강력한 복지 시스템을 갖춘 국가들의 경우에는 설사 '부자에게 유리한 재분배'가 이루어졌다고 해도 이에 따른 성장의 혜택을 사회 전체로 확산시키는 것이 훨씬 쉽다. 세금과 소득 이전 정책이라는 강력한 기제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세금 징수와 소득 이전이 시행되기 전의 소득 분배를 보면 벨기에와 독일은 미국보다 더 불평등하고, 스웨덴과 네델란드는 미국과 비슷하다. 다시 말해서 상당한 양의 물이 밑으로 내려오기 위해서는 복지 국가라는 이름의 전기 펌프가 필요한 것이다.
비슷한 규모와 실적을 올리는 다른 나라 회사 경영진들에 비해 미국 경영자들은 절대 기준으로 많게는 20배나 더 받는다. 이들은 또 보수만 지나치게 많이 받는 것이 아니라 경영부진에 대해서도 제대로 책임을 지지 않는다. 게다가 실제로 미국 경영자들의 보수가 완전히 시장 원리에 따라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미국의 경영자 계층이 지닌 경제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힘은 자신들의 보수를 결정하는 시장 자체를 조종할 수 있을 정도로 커졌다.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2007년 달러화 가치를 기준으로 한 미국 노동자의 시간당 평균 임금은 1973년 18.90달러에서 2006년 21.34달러로 상승했다.
...미국 노동자들의 보수는 1970년대 이후 실질적으로 거의 오르지 않았다.
...개별 보수는 거의 증가하지 않았지만 가구당 수입은 높아졌다. 개별 보수는 거의 증가하지 않았지만 가구당 수입은 높아졌다. 그러나 이것은 점점 더 많은 가정이 맞벌이에 나섰기 때문이다.
...2008년처럼 일이 잘못되는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 기업을 회생시키는 데 납세자들의 돈이 엄청나게 들어가지만 경영진은 그야말로 거의 생채기 하나 나지 않고 사고 현장에서 걸어 나올 수 있게 된다.
가난한 나라가 가난한 이유는 개인들에게 기업가 정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생산을 할 수 있는 기술과 현대식 기업같은 발달된 사회조직이 없어서이다.
개인의 창업을 돕는다는 목표를 내걸고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소액의 돈을 빌려 주는 마이크로크레디트(미소금융) 제도가 의도한 만큼의 성과를 올리지 못하는 것이 점점 분명해지는 것만 봐도 개인의 기업가 정신이 갖는 한계를 짐작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마이크로크레디트 자금의 대부분은 원래 목표였던 가난한 사람들이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는데 사용된 것이 아니라 소비에 사용된 셈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제로 자영업 지원에서 사용되었던 아주 일부의 자금마저도 가난한 사람들이 빈곤에서 벗어나도록 돕는데 실패했다는 점이다.
...도대체 어디서 잘못된 것일까? 동기 부여가 확실하고, 사업에 필요한 기술도 있고, 시장의 압력도 충분한 데다 사업에 온 정력을 기울이는데도 결과가 이렇게 미미한 것은 도대체 왜일까?
...이 문제는 이른바 '구성의 오류'로 빚어진 것이었다. 어떤 사람이 특정 사업으로 성공했다 해서 같은 사업을 하면 모든 사람이 다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라는 말이다.
...가진 기술은 한정되어 있고, 사용할 수 있는 테크놀로지도 제한되어 있는 마당에 마이크로파이낸스를 통해 확보할 수 있는 자금마저 얼마 되지 않으니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사람들이 시작할 수 있는 사업의 종류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이 늘 최선의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직접 관련된 일들조차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이를 전문 용어로는 '제한적 합리성'이라고 한다. 세상은 너무나도 복잡하고, 그런 세상에 대처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은 극도로 제한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가 처리해야 하는 문제의 복잡성을 줄이려면 일부러 선택의 자유를 제한해야 하고 실제로 많은 경우에 그렇게 하고 있다.
특히 극도로 복잡한 현대 금융 시장과 같은 분야에서 정부의 규제가 효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정부가 보유한 지식이나 정보가 더 우월해서가 아니라 정부 규제를 통해 선택의 범위를 제한하여 문제의 복잡성을 줄임으로써 결과적으로 일아 잘못될 가능성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 다른 것도 아닌 자산 가격 결정에 대한 연구로 상을 받은 사람들마저 금융 시장을 읽어내지 못하는 마당에 어떻게 '사람은 늘 자기에게 가장 이로운 최선의 선택을 하는 만큼 그대로 내버려 두면 된다'고 가정하는 경제 원리에 입각하여 세상을 운영할 수 있단 말인가?
교육울 통해 얻은 지식은 사람들이 더 만족스럽고 독립적인 생활을 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만 대부분의 경우 생산성 향상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
...한 나라의 번영을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교육 수준이 아니라 생산성 높은 산업 활동에 개인들을 조직적으로 참여시킬 수 있는 사회 전체의 능력이다...
교육은 소중하다. 그러나 교육의 진정한 가치는 생산성을 높이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잠재력을 발휘하고 더 만족스럽고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있다.
* 결국에는 시스템의 문제다...
18. GM에 좋은 것이 항상 미국에도 좋은 것은 아니다
모든 자본주의 정부는 연구개발과 인프라 투자에 필요한 재원의 상당 부분을 지훤하고 있고, 또 대부분의 자본주의 정부가 국영 기업의 사업 방향을 정하는 방식으로 경제의 상당 부분을 계획한다. 부문별 산업 정책을 통해 미래의 산업 구조를 계획하는 경우도 많으며, 심지어 유도 계획을 통해 국민 경제의 미래 모습까지 설계하기도 한다.
...문제는 계획의 수립여부가 아니라 적절한 수준에서 적절한 계획을 하는 지에 달려 있다.
기회의 균등은 공평한 사회를 이룩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그러나 문제는 모든 사람이 같은 조건에서 경쟁을 했는가 하는 것이다.
...기회의 균등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려면 일정 수준 인상의 결과의 균등이 보장되어야 한다.
...아이들에게 공정한 기회 비슷한 것이라도 확보해 주려면 부모 소득을 최소한 어느 정도는 균등하게 맞춰 주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보장되지 않는 한 무상교육, 무상급식, 무상예방접종 등을 아무리 제공해 봤자 아이들에게 실질적으로 기회의 균등을 제공할 수 없다.
복지정책이 잘 된 나라일수록 계층 이동이 더 활발하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노동자들에게 제2의 기회를 준다는 의미에서 복지 정책은 노동자를 위한 파산법이라고 할 수 있다. 파산법이 기업가들로 하여금 위험을 더 적극적으로 감수하게 해주는 것처럼, 복지 정책은 노동자들이 변화에 더 개방적이고, 그에 따른 위험을 더 기꺼이 감수하는 태도를 갖게 해준다.
다른 모든 제도들과 마찬가지로 복지제도도 장저과 단점이 있다. 특히 이 제도가 보편적이지 않고 미국처럼 선별적으로 적용될 경우 수혜자에게 낙인을 찍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복지 제도는 사람들이 가진 '최저 희망 임금' 수준을 높여서 열악한 조건에서 낮은 임금을 지급하는 일자리를 택하는 것을 꺼리게 만든다. 이런 현상이 꼭 바람직하지 않은 것인지는 각자 견해에 따라 다를 수도 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일을 하는 데도 빈곤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미국의 수많은
근로 빈곤층 문제나 유럽이 안고 있는 전반적으로 높은 실업률이나 심각하기는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모든 잠재적 단점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에게 제2의 기회를 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잘 설계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가지고 있는 여유를 줘서 산업 구조 조정이 쉬워지기 때문에 경제 발전을 촉진시키는 효과가 있다.
미국에서는 금융 산업이 얼마나 매력적인 종목이었던지 심지어 상당수의 제조업 대기업들조차 사업 내용을 들여다보면 사실상 금융기업이라 해도 무리가 아닐 정도로 금융 산업 참여율이 높았다.
...예를 들어 GE, GM, 포드 같이 한때 미국 제조업의 상징이던 회사들조차 자회사로 설립한 금융 기업은 지속적으로 팽창하는 반면, 핵심 비즈니스인 제조업 부문은 수그러들면서 '금융화'되어 버렸다.
금융 발전이 자본주의 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해왔다는 것은 사실이다.
...금융 자본이 경제 발전에 필수적이었던 이유는 산업자본보다 훨씬 유동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이유로 금융 자본은 생산을 저해하거나 심지어 파괴적일 수도 있다.
우선 단기적으로는 경제가 불안해진다. 우리가 최근에 목격한 바대로 유동성 높은 금융 자본이 아무런 경고도 없이, 그것도 대단히 비합리적인 방법으로 국적과 산업 부문을 가리지 않고 옮겨 다니기 때문이다.
더 중유한 것은 장기적인 부작용이다. 금융의 높은 유동성은 생산성 상승을 약화시킨다.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려면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자금을 조달해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자금을 제공하는 금융 자본은 '기다리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장기투자계획을 세우가 실행하기가 어려워진다. 최근 수십년 동안 금융심화도가 엄청나게 높아졌는데도 경제성장이 실질적으로 지체되고 있는 것은 이런 점들 때문이다.
경제학은 쓸모없거나 해로운 것이 아니다. 다만 올바른 경제학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 장하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 2013년의 첫 책...첫 선물...
부분적으로 너무 경제학적인 시각이지 않은가 싶은 부분도 있었지만...대체로 동의...
조금 뒤늦게 읽긴 했지만...좋은 책을 써주신 작가와 좋은 책을 선물해준 동생에게 감사...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공기업을 '적절한 구매자'에게 파는 것이다. 민영화로 국가 경제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공기업이 장기적으로 생산성을 향상시킬 능력을 가진 주체에게 매각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는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는데,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일부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는 것처럼) 정부가 구매자에게 해당 산업에서 현재까지 달성한 실적을 입증하라는 요구를 하지 않을 경우, 그 기업은 경영이 뛰어난 사람이 아닌 자금 조달에 뛰어난 사람에게 팔릴지도 모른다.
강조해서 말하지만, 국영기업이 부정한 방법을 통해 경영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매각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공산주의 몰락 이후 러시아에서는 엄청난 규모의 국가 소요 자산이 부정한 방법으로 새로운 '과두 재벌'의 손으로 넘어갔다. 많은 개발도상국의 경우에도 역시 민영화 과정이 부정부패로 얼룩지게 되면서 잠재적인 수익의 대부분이 국고가 아닌 몇몇 내부자의 주머니로 들어가고 있다. 이런 부정한 방법에 의한 이전은 불법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합법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하는데, 가령 정부의 내부자가 자문을 제공하면서 높은 수수료를 챙기는 방식이다.
국영기업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부정부패 문제를 자주 들먹이곤 하는데, 얄궂게도 민영화 과정에도 역시 부정부패가 개입하는 경우가 많다. 안타깝지만 분명한 것은, 정부가 국영 기업 내의 부정부패를 통제하거나 일소할 능력이 없다면, 민영화를 한다 해서 갑자기 부정부패를 막을 능력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실제로 부패한 공무원들은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민영화를 밀어붙이고자 하는 동기를 가지고 있다. 민영화를 하게 되면 후임자와 뇌물을 나누어 가질 필요도 없고, (국영 기업 관리자들이 원료 공급자들에게서 갈취할 수 있는 리베이트 같은) 장래에 발생할 모든 뇌물의 흐름을 '현금화' 할 수도 있다. 여기에 또하나 덧붙인다면 민간 기업 역시 부패할 수 있으므로 민영화가 부정부패를 줄일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