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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4.05 2006.04.05_뉴욕 3부작 '유리의 도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그렇듯, 퀸 역시 범죄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살인을 한 적도, 물건을 훔친 적도 없었고, 그런 짓을 한 사람을 알지도 못했다. 또 경찰서에 들어가 본 적도, 사설탐정을 만나 본 적도, 범죄자와 얘기를 해본 적도 없었다. 그런 일들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은 모두 책과 영화와 신문에서 얻은 것이었다. 그렇지만 퀸은 그것이 자기에게 불리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의 이야기에서 관심이 끌리는 것은 그 이야기와 세상과의 관계가 아니라 그 이야기와 다른 이야기들과의 관계였으니까. 윌리엄 윌슨이 되기 전부터도 퀸은 대단한 추리 소설 애독자였다. 그는 추리 소설들이 대부분 형편없이 씌여졌고 거의 모두가 건성으로 하는 검증에도 남아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러면서도 추리 소설의 형식에 마음이 끌렸다. 그가 읽으려고 들지 않은 것은 아주 드물게 보이는 말할 수 없이 형편없는 추리물뿐이었다. 다른 책들에 대한 취향은 아주 엄격해서 편협하다고까지 할 정도였던 반면, 추리 소설에 대해서라면 그는 여간해서 어떤 차별도 두지 않았다. 또 기분이 괜찮을 때는 별 어려움 없이 열 권이나 열두 권쯤을 내리 읽어 채울 수도 있었다. 그것은 그를 사로잡고 있던 일종의 허기, 특별한 음식에 대한 갈망 같은 것이었고, 그 허기가 채워질 때까지는 그는 읽기를 멈추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 책들에서 그가 마음에 들어 한것은 충실하고 경제적인 감각이었다. 제대로 된 추리 소설에서는 아무것도 낭비되지 않는다. 문장 하나, 단어 하나도 의미심장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리고 의미심장하지 않은 것까지도 그렇게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서 결국은 의미심장한 것이 된다. 책의 세계는 가능성과 비밀의 모순으로 소용돌이치며 생명력을 얻는다. 눈에 보이거나 말해진 것 모두가, 아무리 사소하고 하찮은 것일지라도, 이야기의 결과와 관련될 수 있기에 그 어느 것도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이 핵심이 되어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하나하나의 사건과 함께 책의 중심을 바꾼다. 그러므로 중심은 어디에나 있으며, 책이 결말에 이르기까지는 어느 한 범주도 소홀히 할 수가 없다.
 
탐정은 눈여겨보고 귀 기울여 듣는 사람, 사물과 사건들의 늪을 헤치며 그 모든 것을 하나로 통합해 의미가 통하게 해 줄 생각과 관념을 찾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작가와 탐정은 서로 바뀔 수 있는 존재이다. 독자는 탐정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면서 지엽적인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나는 것을 마치 처음인 것처럼 경험한다. 그리고 마치 주위의 사물들이 자기에게 말을 걸기라도 하듯, 자기가 이제 그것들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이 단순히 존재한다는 사실 이상의 다른 의미를 띠기 시작하기라도 하듯 그런 것 들을 알아차리게 된다. Private Eye. 퀸에게는 그 말이 3중의 의미를 지니과 있었다. 즉, 그말은 (조사자 investigator)를 의미하는(i)라는 글자일 뿐 아니라 자신의 살아 숨쉬는 육체에 감추어져 있는 조그만 생명의 싹인 대문자 (I)이기도 했고, 그와 동시에 작가의 육체적인 눈,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세상을 내다보고 그 세상이 모습을 드러내도록 요구하는 눈이기도 했다. 지난 5년 동안 퀸은 그 동음이의어에 붙잡혀서 살아온 셈이었다.
 
* 폴 오스터 '뉴욕 3부작-유리의 도시' 중에서 


Posted by G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