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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6.15 2007.06.14_내 마음의 시계

"시계를 고치고 있군요"
돌아보니 미스 윤이 들어와 있었다. 그녀는 체온계도 혈압계도 또 주사침도 들고 있지 않았다.
"시계를 고치고 있다고 말했잖아요? 무얼 저만 그렇게 보세요?"
나는 그제서야 창문으로 시계탑을 내다 보았다. 좀 멀기는 하지만 사람이 하나 그 탑시계에 매달려 바늘을 끼워넣는 것이 보였다.
"그렇군요. 바늘을 끼워넣는군요."
"그럼 제 거울을 돌려 주세요."
나는 침상 귀에 팽개쳐둔 거울을 집어 미스 윤에게 내밀었다.
"용도를 몰라서 그냥 두어둔 것입니다."
"용도라뇨?"
"시계 바늘을 수선하기 때문에 그걸 돌려줘야 한다는 이유는 더욱 모르겠군요."
그녀는 한참 눈을 껌벅이고만 있었다.
"선생님은 아마 적적하실 때 거울을 들여다보신 적이 없으신 가봐요. 거울을 들어보노라면 잃어진 자기가 망각 속에서 살아날 때가 있거든요."
"참 괴상한 취미로군요."
"그렇게 생각되실지도 모르죠. 제가 틀리지 않다면 선생님은 분명 내력 깊은 이야기가 있으실 분인데, 그 이야기가 너무 깊이 숨어버린 것 같거든요."
나는 미스 윤이 왜 이런 소릴 지껄이고 있는 지 알 수가 없었다. 탑시계에 매달려 있던 사람이 바늘을 두개 얌전히 꽂아 놓고 내려갔다. 미스 윤은 거기다 시선을 준 채 전에 없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선생님 마음에도 이제 바늘을 꽂아보세요. 그럴 힘이 있을 거에요. 선생님에게는. 뭣하면 거울을 하루 더 빌려드리지요."
그녀는 거울을 다시 침대에 놓아두고 방을 나갔다. 이상하다. 이 여자는 틀림없이 나의 병세를 알고 있는 모양이다.
거울을 봐라?

* 이청준 "퇴원" 중에서

* 내 마음은 오랫동안 나이를 먹지 않았다.


Posted by G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