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촘스키가 가장 혐호하는 지적 작업의 현장이 되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프랑스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나의 정치적, 학문적 작업의 대상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은 내 연구에 대해 늘상 글을 쓰고 있지요. 그러나 그것은 프랑스 지식인 세계의 전형적인 유아적 속성일 뿐입니다." 그의 주장은 이어진다. "비록 프랑스인들은 일부 탁월한 언어학자와 과학자, 무정부주의자, 기타 인사들을 자랑하지만, 매우 편협하고 상당히 일천한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나는 60년대와 70년대에 프랑스에서는 거의 정치 강연을 하지 않았습니다. 독단에 근거한 왜곡이 너무 심해서 강연을 하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였으니까요"(1994.05.30. 편지). 알튀세, 바슐라르, 보봐르, 까뮈, 레비나스, 레비스트로스, 사르트르, 세레스 등의 인물들은 특정 부류의 존경을 받고 있지만, 촘스키는 이들에 대해 특별히 언급하지 않는다. 그의 의도는 일부 프랑스 이론가들에게 부여된 스타의 지위와, 그들이 확립한 사조의 학설에 부여되는 존경에 문제를 제기하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가령 '언어와 정치학'에서 그는 실존주의, 구조주의, 라캉의 철학과 해체주의에 대해 그러한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첨언하자면 미국인들에게도, 촘스키가 거부하는 극단적 숭배를 조장하는 책임이 똑같이 있는 것 같다. 미국의 학계는 종종 이러한 경향에 부화뇌동하여, 천문학적인 보수로 주요 석학들을 고용하고, 또 그들의 충실한 추종자들을 선발함으로써 특정한 운동의 수명을 연장시킨다.
많은 프랑스 지식인들, 혹은 프랑스적 지식인들은 촘스키의 글이 현재의 정치 사조의 섬세함을 수용하기에는 너무 시대에 뒤처진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에 대해 촘스키는, 프랑스인들이 자신들 앞에 놓인 것을 제대로 보려하지 않으므로, 그들은 "어떻게 진실을 말하고, 사실에 주의를 기울이며, 최소한의 이성을 갖춘 기준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배워야 한다고 대답한다.(1995.03.31. 편지) 촘스키는 또한 프랑스 지식인들은 프랑스 밖에서 이루어진 업적과 상호 교류하기를 거부해 왔고, 그 결과 프랑스의 엘리트는 폐쇄화, 퇴행화 되었다고 공격한다. 촘스키는 많은 증거를 제시한다. 가령 1930년대 이후 전세계에서 연구되었던 비엔나 실증주의 철학은 프랑스에는 거의 소개되지 않았다. 이 학파의 주요 저작들은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불어로 번역되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프랑스 생물학자들은 1970년대까지도 다윈의 진화론 이전 단계에 머물렀으며, 대부분의 독일 철학은 지금도 프랑스에 소개되고 있지 않다. 촘스키의 견해에 따르면, 프랑스에는 유례없는 편협성과 학문적 억압이 횡행하고 있으며, 이 현상은 학문 분야 전반에 걸쳐 있다. "나치 점령 시절의 프랑스에 대한 진실이 미국의 연구로 밝혀지기 시작했을 때, 프랑스에서는 놀라움과 소란이 일어났습니다. 그 곳에서는 사실이 거의 완전하게 억압되어 왔기 때문이지요. 지금도 대부분 억압되고 있습니다."(1995.03.31. 편지)
촘스키는 언어와 상호작용에 관한 프랑스식 연구에 반대하며, 그 요지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포스트모더니즘에도 적용된다. 포스트모더니즘 학자들의 진술은 막연한 전문용어로 포장되고, 그런 다음 '이론'의 지위로 격상된다. 촘스키는 20세기의 학문적 업적으로 간주되는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에 대해 지금까지 시랄한 비판을 가했다. 그는 부르디외와 리오타르를 지목하면서 이렇게 언급한다.
의심의 여지없이 모든 언어적 상황에는 권력구조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렇게 자명한 이치를 놀라운 것으로 간주하여 갖가지 어휘로 포장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지식인 뿐입니다. 정직한 사람들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포장을 벗기고 가능한 한 무게를 줄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문헌연구를 진행하는 다른 사람들을 돕고 그들로부터 도움을 청하기도 하면서 상호 협력해야 합니다. 물론 그것이 끝은 아닙니다. 리오타르와 포스트모던 시대에 관해 말하자면, 나는 하찮은 것들과 자기만족적인 무의미 이상의 어떤 것을 보여주는 징후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방대한 담론구조에 감추어진 어떤 진실의 씨앗을 감지하려 합니다. 그것은 정말로 단순한 것입니다. 아마도 내가 무엇인가를, 아마도 많은 것을 놓치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나의 단순함에 대해 사과해야겠지요. 어쩌면 중요한 요인을 간과하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나는 어려운 문제들을 이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다른 어려운 분야들, 이를테면 양자역학 같은 분야에 대해서는 친구들과 동료학자들이 내가 알고 싶은 것을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에서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더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포스트모더니즘의 경우에는 아무도 나에게 그것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없고, 나 역시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 지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이전에 알려진 것과는 완전히 다른 전혀 새로운 형태의 인간지능이 생겨났는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나도 틀림없이 그 중 한 사람이겠지만, 적절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끝내 이 새로운 인간지능을 알 수 없는지도 모릅니다. 아마 그렇겠지요. 이미 말했듯이 나는 개방적입니다. 또다른 설명방식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귀담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1995.03.31. 편지)
로버트 바스키 '촘스키, 끝없는 도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