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경험해보지 못하고 쉽게 입력된 시각적 정보는 아주 자주 뇌리에서 잊혀져...기억 한구석에 쳐박힌다...
어린 날 배낭 여행 시절에 택시를 타는 일은 꿈도 못 꿀 일이었으니...도로 쪽은 아예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았었고...
브리짓 존스의 다이어리에서 브리짓 존스가 그녀의 친구들과 이 택시에 가득 들어 앉아 왁자지껄 수다를 떠는 장면이 있었서 이 택시를 그렇게 화면으로 본 적이 있었다...

그래...영국 택시는 이렇게 생겼었다...
에딘버러 공항 이른 새벽 찬 공기에 놀라서 아래윗니가 쉴새없이 연신 따악따악 소리를 내며 부딪히던 그 순간...
내 앞으로 천천히 미끄러져 다가오는 이 택시를 보고 순간 당황했더랬다...
뭐지? 이게 택시?

밤새 영국북부의 고속도로를 달렸다...
'얼마나 걸리나요?' 하는 나의 물음에 아저씨들은 '응...네 시간 정도'라고 예상을 했었는데...
역시나 야밤의 운전이 쉽지가 않았던 모양이다...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는 두 시간 정도 더 걸려서...중간중간 휴게소와 주유소에서 쉬었던 시간을 포함해, 대략 총 6시간을 달려 에딘버러 공항에 도착했다...

어차피 차는 에딘버러 공항에서 반납하기로 하고 빌렸던 거였고...
각각 집이 에딘버러 근교였던 아저씨들은 당일치기로 런던을 다녀오던 길이라 두사람 자기 차를 공항에 주차해두고 있었다...
친절한 아저씨들...처음에는 한분이 도착하는대로 나를 에딘버러 시내까지도 태워주려고 마음을 먹었었는데...
예상보다 시간이 길어지면서...눈꺼풀이 너무 무거워서 연신 졸고만 있던 나는 물론이고...교대로 운전을 하던 아저씨들도 이미 녹초가 되어있었고...
도착해서 차를 반납하고 다시 공항 주차장까지 가로 질러야 할 번거로움과 시간 등의 이유로...
차라리 공항에서 나는 택시를 타고 곧 바로 들어가는 것이 더 낫겠다고 추천을 하신다...

"자...승객 여러분...마침내 도착을 했습니다...기대했던 것 보다...영국을 하루만에 훨씬 더 많이 봐버렸죠..."
택시 승강장 앞에서 내려 가볍게 포옹을 하고 악수를 하며...
렌트비와 기름값을 물었더니...
두분 "넌 우리나라에 온 손님이야...오늘 같은 일이 있어서 너무 미안해...여행 재미있게해!" 하신다...
어떻게 나중에라도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 할 것 같아서 얼른 명함을 달라고 해서 받아들었다...
음...동글동글한 조금 더 젊은 아저씨가 '필'이다...
너무 정신이 없던 순간에 인사를 나누어서...사실 그 동안 두 아저씨의 이름도 모르고 있었더랬다..

여행에서 돌아와 나중에 자그마한 성의로 초콜렛을 두통 사서 필한테 보냈더랬다...
정말 미안한데...다른 한 아저씨의 이름은 잊어버렸다고...대신 안부 좀 전해달라고 했더니...
센스있는 필...얼른...스티브에게 대신 안부 전해줄께...라고 답장을 쓴다...

스코틀랜드 경계를 들어서면서부터 흩뿌리기 시작하던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고...
에어컨 공기에 차안에서부터 꽁꽁 얼어있었던 나는 더 찬 바깥 공기에 그대로 얼어서 오들오들 떨며 택시에 올랐다...
주소를 묻는 택시 기사의 물음에 정신을 차리고 그제서야 호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어 배터리를 아껴두느라 껐던 전원을 켜서...민박집의 주소를 찾던 그 순간까지...
전화기를 간신히 쥔, 그 손을 을매나 바들바들 떨었는지...모른다...
아...이건 정말로 제대로 약...한이의 손이다...

그래...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에딘버러에 무사히 도착했다...
스티브..필...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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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동안 가장 여러번 가고...가장 오래 머무른 곳을 꼽으라면...
주저할 것 없이...스탠스티드다...

슈트트가르트에서 스탠스티드가고...
스탠스티드에서 캠브리지 가고...
캠브리지에서 다시 스탠스티드 가고...
스탠스티드에서 에딘버러 가고...
다시 에딘버러에서 스탠스티드 가고...
마지막으로 스탠스티드에서 슈트트가르트로 돌아왔으니 말이다...

그냥 큰 탈 없이 여행을 했어도...이 정도면 스탠스티드 공항이 제 아무리 Sir.Norman Foster가 설계하셨다고 해도 제법 질릴만 한데...
여행 첫날의 난리통에 정내미가 아주 제대로 떨어졌다...
단언컨대....다음번 런던 갈일이 있으면...무조건 히드로다...
스탠스티드는 두번다시 안간다...
내 아주 그냥....

캠브리지에서 5시 버스를 타고 공항에 대략 6시경에 돌아와서 8시 50분 에딘버러행을 기다렸다.
'유레일패스로 맘껏 돌아다닐 수 있던 2002년에도 이런 식의 강행군은 안해봤었는데..이 무슨 난리 생쇼부르스인지..' 라고...생각을 했었다...

그렇지만 사실...이것까지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주로 저가 항공사가 날으는 공항인데 비해서, 지은지 얼마되지 않아서인지...면세점 규모도 제법되서...
한동안은 면세점 이곳저곳을 기웃대며 꽤 시간을 잘 보냈더랬다...
그런데...8시가 다 되록 게이트 넘버가 뜨지를 않는 것이다...
8시 10분...마침내 게이트가 떴다...
바로 게이트로 가서는 한 20분을 기다렸을까?
보통이면 벌써 게이트가 닫혔을 시간인데...연착인가 생각을 할 무렵...
게이트 위에 달린 모니터 앞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어 웅성웅성한다...

무슨 일인가 해서 나도 일어나 다가갔더니...
마침 여자아이 하나가 에딘버러에서 기다리고 있는 친구에게 전화 중이다..
이야기인 즉슨...갑자기 한순간에 비행 리스트에서 에딘버러행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에잉?? 놀란 나도 고개를 들어 모니터를 바라보는 순간...
안내 방송이 나왔다...
"프랑스 공항 정비팀의 파업으로 비행기 한대가 회항하지 못해...에딘버러행 비행기는 취소되었습니다...승객들은 데스크로 돌아와주시기 바랍니다..."
OTL

꽤 민첩하게 움직였는데도...데스크 앞에 도착하니...
앞에 벌써 20여명의 사람이 섰다...
비행기 한대가 뜨지를 못했으니...
내 뒤로 선 사람 수는...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이미 9시를 훌쩍 넘기고 있는 그 시간...
이미 한적할 대로 한적한 공항...데스크에는 고작 2~3명의 직원들이 앉아서 승객 한사람 한사람들의 일을 처리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곳에서 몇년을 살면서도...이런 상황에 대처하는 유럽의 서비스 정신에는 여전히 적응이 되질 않는다...
비행기가 사라진 순간부터 하얘졌던 머리를 애써 가누며...
상황을 이해하고자 노력을 했는데...

일단 예약을 해두었던 에딘버러 민박집엘 전화를 해서...비행기가 취소되었음을 알렸더니...
당연히 난처해하는 반응을 보인다...
전에 부탁했었던 하이랜드 투어도 이미 예약을 했단다...
이미 9시가 훌쩍 넘은 시간...
사촌오빠와는 연락이 닿질 않고...
마침 충전기도 빠뜨린 핸드폰의 배터리는 벌써 빨간줄을 보이기 시작하고...
런던을 들어가자니...숙소도 없고...1시간 반이나 걸릴테고...
거기다 기다렸다가 표 보상문제 처리를 하고 들어가자면 최소 1시는 되어야 도착할 것 같고...

공항이면 으레히 붙어있는 그놈의 공항호텔이 왜 스탠스티드에는 없는지...
애써 정신을 좀 차려보려 하지만...상황을 가늠하면 해볼수록 머리 속이 더 하얘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마침...앞에 서서 데스크에서 한차례 전쟁을 치루고 온 사람들이 잔뜩 격앙된 목소리로 소식을 전한다...
환불은 없고 대체 비행기표만 제공을 하는데, 예약이 꽉차서 금요일까지 비행기가 없답니다...
오늘은 수요일...에딘버러에서 런던으로 다시 내려오는 날이 토요일...
머리 속은 점점 더 하얗다...
점입가경...

앞에선 아저씨에게 혹시 스탠스티드에서 에딘버러로 올라가는 밤버스는 있는지 물었다...
친절한 아저씨...딱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버스가 있기는 할테지만, 8시간이 넘는 힘든 여행이 될꺼란다...
차라리 지금 런던으로 가서 하룻밤을 자고 기차를 타면 4시간 밖에 걸리지 않으니 그렇게 가는 것이 훨씬 나을 거란다...
아저씨의 호의는 고맙지만 그 순간 돌아가는 머릿속 계산기...
런던까지 왕복 버스비 20 파운드, 하룻밤 숙박비 최소 50파운드, 런던에서 에딘버러까지 기차비 최소 100파운드...
비행기 한편이 꼬여서 물게될 추가비용을 생각하니 더 심란해지는 순간이다...

전날 거의 자지 못한데다...이미 하루 종일을 돌아다닌 뒤라 몸은 지칠대로 지치고...
상황은 꼬여만 가고...
하얗게 질려가는 내가 안되었던지...옆에 섰던 다른 아저씨가 말을 건넨다...
자기도 오늘 꼭 에딘버러를 올라가야 해서 친구가 버스와 렌트카를 알아보러갔는데...
혹시 차가 구해지면, 너도 태워줄께...
말만으로도 너무 고마워서 'It's very kind of you.'라고 대답을 하는데...
그 아저씨가 말한 친구가 차키를 들고 짠 하고 나타났다...
"갑시다...차 구했어요...오늘은 버스도 없답니다..."

생전 처음 보는 아저씨 뒤로 밝게 빛나는 후광을 보았다...
그렇게 그 밤...겨우 스탠스티드를 벚어날 수 있었다...

"가자!"는 아저씨를 보고...
그래도 슬며시 아직 비행기표에 대한 아쉬움이 남은 내가..."표는?" 했더니...
아저씨...so cool 하게..."잊어버려...그런 건 못받는 거야..."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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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놀이를 하고 내려 어느 골목 모퉁이를 돌다가 발견한 오래된 한 양복점의 지하 재봉실...
떼레즈 라깡이 갑자기 생각났다...
떼레즈가 유령처럼 자리를 지키던 그 가게가 저랬을까...
떼레즈가 바라볼 수 있던 세상의 틈이 저만큼이나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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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브리지의 하이라이트는 펀팅이었다...
커피 한잔으로 몽롱했던 정신과 노곤했던 몸을 깨워서는 한시간 뱃놀이를 했다...

적당하게 선선한 공기에 딱 기분 좋을만큼만 뜨거웠던 볕을 쪼이며...
사공의 설명을 들으며 개울을 따라 들어선 고풍스런 캠퍼스들을 구경하고 그와 함께 작은 이 도시의 흐름을 읽는다...
그렇게 한시간 뱃놀이를 하고 내리고 나니... 지도가 한눈에 쏘옥 들어온다...

몸이 곤해서 몸을 좀 추스릴 마음으로 배를 먼저 탔었는데...
다른 여행객들(음, 특히 젊은 처자들)에게도 배를 먼저 타고 도시를 둘러보라고 권하고 싶을 정도로...여러모로...너무 좋았다...

음... 사실 캠브리지 뱃놀이의 감동에는 상당 부분 사심(혹은 흑심?)이 껴있었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와우... 캠브리지의 뱃사공들은 정말이지...최고다...
적당히 건장한 체격에 보기좋게 그을린 탄력있는 피부...면반바지 아래로 늘씬하게 뻗은 다리
단화를 옆에 벗어두고 맨발로 뱃머리에 당당히 서 늘어놓는 브리티쉬 액센트...
말 그대로...이지적 섹시함 그 자체다

내가 탄 배를 저었던 사공은 그나마 좀 왜소하고, 뒤의 하늘빛이 훤히 보일 정도로 커다란 구멍을 귀에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말문을 떼는 순간... 홀라당 반해 뚝 침흘릴 뻔 했다...희릭...
수줍어져서...대놓고 감히 사진도 못 찍었더라는...아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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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두번째 휴가 영국...
기분 내키는 대로 날짜만 대충 잡아놓고 무작정 그 기간중 대충 싼 비행기표를 끊고 보는 편인데...
이번에도 그렇게나 즉흥적인 선택의 결과다...
작년의 블라인드 부킹만큼 즉흥적이진 않지만...

일정이 너무나도 빡빡했던 프로젝트를 겨우겨우 어떻게 어떻게 마무리짓고...
대충 마무리하고 이제 퇴근하라는 소장님의 형식적인 인사를 뒤로 하고 사무실을 빠져 나와...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겨우겨우 시간을 내어 수다를 좀 떨고...
밤 12시 가뜩이나 작은 눈에...딱붙어 떨어지지 않는 눈꺼풀을 억지로 밀어올려 가며...짐을 싸니 1시 반...
그렇게 손에 잡히는 대로 쌌던 짐은 무게만 나가고...나중에 열어보니...3분의 일정도는 빨래감이었다...흑...
휴가를 떠납니다고...집에 보고 전화를 드리니 2시...

알람에 눈을 뜨니 4시...
반응하지 않는 몸을 억지로 꾸역꾸역 움직여 나름 서둘렀는데도...
지하철 역엘 갔더니...아뿔사...20분에 한대씩에 있는 차를 놓쳤다...
덕분에 가뜩이나 빠듯하게 잡았두었던 공항 도착 예정시간이 20분 늦어졌다...
미리 인터넷으로 체크인을 해두었기에 망정이지 큰일날뻔 했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게이트를 향해 달렸음에도...
게이트가 닫히기 바로 직전...끝에서 4번째로 비행기엘 탔다...

1시간 10분 비행...
스탠스티드 도착...
30분을 기다려서 50분 코치를 타고 달려 캠브리지에 도착했다...
그게 10시쯤...

이전 한달 동안은 물론...캠브리지 도착하기까지 마지막 10시간 동안에도 너무 많은 일들이 있어 몽롱하기만 했던 그 순간 발견했던 카페...
유난히 사람이 많이 모여 북적북적한 골목의 뒤쪽한 편에서 조용한 이 카페를 발견했다...
공항을 향하려고 지하철역 플랫폼에 선 그 순간부터 간절했던 커피를 드디어 마셨다...
공항과 캠브리지 시내의 쇼핑몰에서는 2.20 파운드나 하는 커피를 한 사발이나 내어 주면서도 2 파운드란다...
갑자기 기분이 너무 좋아져서 팁을 50펜스나 얹어서 준다...
불과 10분 전에 Tourist info에서 60펜스를 달라는 지도를 비싸다고 안사고 뒤돌아선 주제에 말이다...
이건 정말 순전히 카페인이 부족해서 잠이 덜 깬 상태였기 때문이다...고 핑계를 댄다...

그래도 늦은 아침 푸른 하늘 아래 어느 그늘 밑에 숨어 마시는 커피 한잔은 너무 감미롭다...
이 시간에 비록 노곤함이 섞이긴 했지만...이렇듯 나른함을 느끼며 커피 한잔을 즐긴게 도대체 얼마만이었는지...

아웅...주의 한가운뎃 날...수요일...늦은 아침...커피 한사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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