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지고 보면 시간 여유가 꽤 많은 한 해였었는데...올해는 영화를 참 덜봤다... 그렇게 올해 본 몇편 되지 않은 영화 중 최악의 영화 '2012'
아무리 롤랜드 에머리히에게 기대하는 바가 없고... 이런 종류의 영화는 이야기를 바랄 것 없이 그림만 보면 된다지만... 전인류의 목숨을 가지고 분탕질을 쳐놓고...툭 꺼내놓는 결과물을 보고 있자니... (그만한 가치가 없는 이유로) 분노까지는 아니지만...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짜증과 비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에머리히가 독일 감독이라...도대체 독일 쪽은 영화를 어떻게 평하고 있는지 좀 궁금해서... 슈피겔 기사를 읽었는데...역시나 깃털보다 가벼운 영화라고 했던 이동진 기자의 평에 비하면...그냥 칭찬을 하고 말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부드럽다... 역시 독일 사람들 팔도 결국에는 안으로 굽는 거다...
슈피겔에서는 에머리히가 그의 영화들에서 현대 사회의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구조를 산산조각낸다고 썼는데... 내가 보기에는 현대 사회의 일면을 시각적으로는 파괴하면서도 한편으로 에머리히만큼 철저하게 '미국' 현대 사회의 정치, 경제 구조에 빌붙어 있는 감독도 없는 듯하다...
사악한 외계문명으로부터 지구와 선량한 유목민을 구하는 듯 보이는 '스타게이트'는 사실 미군부대가 시공간을 초월해 우주 어느 별로 날아가...이집트 고대 문명을 날려버리고 금의환향하는 영화였고...
그의 출세작인 '인디펜던스 데이'는 전세계가 무력한 가운데... 미국 정부만이, 특히 대통령이 전투기까지 타고 직접 나서서 지구를 구해내 지구의 독립을 수호한다는 영화였고...
중요한 것은 크기라던...프랑스 정부의 비밀 핵실험으로 발생한 돌연변이 '고질라'는... 뉴욕 시내 구석구석에 기스를 좀 냈으나... 따지고 보면...핵문제에 대한 책임 문제는 고사하고...무능한 작전 사령관 하나 자르지 못하고 사라진 거대 도마뱀이였을 뿐이고...
북반구가 통째로 얼어붙어서...서구 사회의 종말을 그리는 듯 보이는 '투모로우'는... 나라가 없어져버린 마당에도...다른 나라에 부채 탕감을 운운하며 남의 나라에 뻔뻔하게 자리틀고 앉아, 철저하게 미국적인 태도로 끝을 맺는다...
그렇지만...이번 영화 2012야 말로...단순히 CG와 각종 재난의 집결판인 것이 아니라, 현대 사회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정리한 완성판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이 영화에서 에머리히는 중요한 것은 크기라는 모토에 중요한 것은 살아남는 것이라는 것을 덧붙인다...
창세기에서 신의 선택을 받아 살아남았던 노아와 달리 2012의 선택권은 정치권력과 자본력이 쥐고 있다...
미래 인류의 재건을 위해...적자생존의 법칙에 따라 우수하게 선별되었다는 방주의 선발 탑승자들은 사실 정치와 자본의 경쟁사회의 승자들일 뿐이다.
(세계의 그 많은 관객들이...G8에 속하지 않은 지구상 대부분의 나라들은 대통령조차도 탑승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사실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러한 태도는 드라마를 끌고 나가는 소위 평범한...주인공 가족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비규환 속에서 공존을 위해 다른 이들에게 같이 도망칠 것을 제안하기는 커녕...눈길 한번 주지 않고...
아주 자주 다른 이들을 희생시켜가며...그렇게 살아 남는다...
그래서 그렇게 살아남은 소수의 인류는 여전히 정치 놀이의 끈을 놓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실소의 정점은...
방주의 문을 여네...마네 싸우다가 세계 각국의 정상이 각국의 명예를 걸고...문을 열기로 선포하는 장면이었다...
국민들을 예지녁에 버리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정치가들이 도대체 더이상 명예를 걸 수있는 국가가 어디 있다는 것인가?
영화는 아프리카만이 유일하게 망망대해 위에 남은 땅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아프리카를 바라보며 끝난다...
나름 희망을 제시한답시는 영화의 끝이 더 짜증스러웠던 것은...
그 놈의 정치가들은 이제 아프리카 대륙에서...어처구니없이 땅따먹기를 하며 국가놀이를 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신대륙의 역사는 그렇게 반복될 것이고...
에머리히는 그렇게 자신의 영화를 똑같이 반복해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캘리포니아에서 지구 종말이 시작되고... 존 쿠삭이 지도 한 장 얻겠다고 그 난리 중에 우디 해럴슨 찾으러 가기 전까지는 그나마 시각적 효과에 빌붙어 좀 볼만했었다...
그런데 재난의 규모 자체가 휴먼 스케일을 과도하게 벗어나...지도가 달라질 정도가 되기 시작하니... 컴퓨터 그래픽이 제 아무리 잘나도...더 이상 손아귀에 긴장을 쥐어줄 수가 없는 거다... 전인류 말살의 원망을 빗겨가기 위한 전략의 틈이다... 원망을 벗어났을 수도 있지만...그 틈으로 긴장까지 같이 빠져 나가 버렸다...
빌리언을 모아 만든 방주가 겨우 문 하나를 못닫아서 침몰하게 생긴 상황 같은 어이없는 헛점들은 일일이 다 열거할 필요도 없고...
스토리는 빼고 화면만 보자...고 해도... 그 화면을 보면서...두시간 반 동안 몸을 비비꼬고 있었으니... 충분히 실패한 영화다...
Hier entlang zum Weltuntergang
Wie
man Städte und Landstriche zerlegt, weiß er. Jetzt hat sich Regisseur
Roland Emmerich die ganze Welt vorgeknöpft. Sein Endzeitspektakel
"2012" zeigt die Apokalypse als bildmächtigen Untergangsporno mit der
schlichten Botschaft: menschliche Zivilisation? Muss in den Müll.
Es
ist blöd gelaufen für Apokalyptiker, gerade in den letzten Jahren.
Dabei hätte es 1999 eigentlich klappen müssen: Der Millenniumswechsel
galt als todsicheres Datum fürs Weltenende. Und dann? Nichts. Kein
Computergau, kein Zusammenbruch der globalen Infrastruktur.
Stattdessen: Viel Party an Silvester, danach ging's weiter wie bisher.
Jetzt
kriegen die Untergangspropheten noch mal eine Chance: Der 21. Dezember
2012 ist das nächste Datum für den Superclash. Für diesen Tag sagten
die Maya das Ende der Welt heraus. Auch im chinesischen Orakelbuch
I-Ging und im Alten Testament soll es Hinweise auf das Datum geben.
Wenn
es auch diesmal nicht funktioniert, wenn die Zivilisationsmüden am
nächsten Tag wieder die verhasste Kultur vorfinden, inklusive
Straßenverkehr, Börsenkursen und Mikrowellenessen, dann können sie sich
wenigstens an Roland Emmerichs "2012" schadlos halten. Der Film ist
opulente Untergangspornografie, ein gigantomanisches Spektakel, bei dem
die Natur dem Menschen ordentlich Bescheid stößt.
Supervulkane
fetzen Kontinente auseinander, Gesteinsbrocken bombardieren die
verbleibenden Landmassen, und was dann noch nicht klein gekrümelt
wurde, kriegt die Himalaja-hohen Flutwellen ab. Das ist im Groben die
Handlung, und weil Grobheit und die von ihr ausgelöste Schaulust Sinn
und Zweck dieses Stadt-Land-Fluss-Zerknüllkinos ist, muss man sich
eigentlich nicht beschweren.
Diesmal
darf Emmerich seine Zerstörungswut allerdings noch umfassender als
bisher in Bilder fassen. Vorbereitet war man ja, durch jene
Blockbuster, mit denen der schwäbische Regiehandwerker soziale,
politische und kulturelle Strukturen zerlegte. War das nicht praktische
Architekturkritik, als Godzilla New York zertrampelte? Und als in
"Independence Day" das Weiße Haus explodierte: Ging da nicht auch die
verwaltete, entfremdete Welt zu Bruch?
Natürlich
muss, aus rein dramaturgischen Gründen, in diesem
Pulverisierungskintopp immer auch eine Erzählung über Menschen
vorkommen, die sich bewähren und ein Happy End hinkriegen. In "2012"
gibt es deshalb einen mäßig erfolgreichen Buchautoren, der seine
Familie vernachlässigt hat, im Angesicht globaler Auslöschung aber
seine Vaterqualitäten entdeckt.
Ihn
begleitet der Zuschauer wie den Helden eines Computerspiels über die
verschiedenen Levels der Zerstörung hinweg bis ins Finale, das auf
einer riesigen Arche stattfindet. Dort hat sich der Rest der Menschheit
versammelt, um, tja was eigentlich? Endlich mal die Sache mit dem
Umweltschutz ernst zu nehmen? Sich die ganzen Ungereimtheiten der
Zivilisation - Armut, Ausbeutung, Gewalt - vorzuknöpfen?
Der
Film endet hier, das ist konsequent, weil das Ausspinnen von Utopien
nicht auf der Agenda steht. Emmerichs filmische Logik konzentriert sich
auf die Kreation der Destruktion, und in der Aufwendigkeit, mit der
Orkane, Tsunamis und Erdbeben programmiert werden, liegt ein
vielsagender Widerspruch.
Eine Katastrophe namens Fortschritt
Kein
anderer Regisseur nutzt technologische Innovationen derart konsequent,
um seine Moderne- und Technikfeindlichkeit zu inszenieren. Die wahre
Katastrophe, das ist der Fortschritt. Zuletzt zeigte Emmerich das im
Prähistorienspektakel "10.000 B.C.": Da wurde der ägyptischen
Hochkultur mit maximaler Rechnerleistung von ein paar Mammutjägern der
Garaus gemacht.
Natürlich
speist sich das Katastrophengenre generell aus Ressentiments, es
verquirlt Schuldgefühle und Bestrafungsphantasien. Und es bestätigt das
magische Potential des Mediums: Die im Bild gebannten Schrecken sind
weniger schrecklich, wenn die Leinwand sie als Moment der Angstlust
gefangen hält.
"2012"
weitet die Grenzen des Genres jedoch ins Extrem. Denn diesmal sterben
nicht nur ein paar tausend Amerikaner oder Ägypter, diesmal sterben
Milliarden. Und mit ihnen die Institutionen, die Kulturen, die
Glaubenssysteme. In Italien zerbirst der Petersdom, kurz vorher geht
ein Riss durch Michelangelos "Erschaffung des Adam". Das ist die
Kernszene des Films: Die Schöpfung wird rückgängig gemacht, das Kino
ist eine gigantische Kulturrückbaumaßnahme und Emmerich ihr oberster
Stratege.
Sieh an: Der Untergang
Damit
dies darstellbar bleibt, ist man, was die filmische Perspektive angeht,
nie mittendrin, sondern letztlich nur dabei: als übergeordnetes Auge,
das das Versinken der Welt bezeugt. Immer wieder braust man mit einem
Auto, einem Flugzeug oder sonst einem Vehikel durch die zerberstende
Welt, bis die Kamera aufzieht, und man sich gottgleich über das
apokalyptische Szenario erhebt. Dann schwebt man im Nirgendwo und
bestaunt die sich selbst verschlingende Erde.
Aus
Sicht der Menschen, sagen diese Bilder, ist die Apokalypse nur halb so
viel wert. Wer die Endzeit zeigen will, braucht Überblick. So kann die
Kamera immer neue, prächtige Tableaus der Auslöschung malen, bis von
der Welt nur noch ein einziger bleischwarzer Ozean übrig ist.
Roland
Emmerich hat die Genesis revidiert. Was bleibt so einem noch? Warten
auf den Untergang? Zwei Jahre können eine lange Zeit sein.
Von Daniel Haas 출처: http://www.spiegel.de/kultur/kino/0,1518,660118,00.html
세계멸망을 향한 길
그는 어떻게 인간이 도시와 자연환경을 어떻게 박살낼 수 있는 지, 아주 잘 안다. 감독 롤랜드 에머리히가 이번에는 전세계를 주물렀다. 그의 세계멸망 블록버스터 '2012'는 아포칼립스를 강렬한 이미지로 가득찬 세계종말 포르노로 그렸다. 아주 간단한 메세지를 담아서 '인류 문명? 쓰레기통 속으로'
최근 몇 년은 종말론자들에게 아주 불리하게 돌아갔다. 사실 1999년에 이미 끝이 났어야 했다. 밀레니엄은 당시 세계 종말의 정확한 날짜일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컴퓨터 대란도 없었고, 전세계 인프라가 충돌하는 일도 없었다. 대신 31일 곳곳에서 많은 파티가 열렸고, 그리고 지금까지 세상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세계종말의 예언은 또 다시 기회를 맞았다: 2012년 12월 21일이 다음 멸망의 약속일이다. 이날은 마야인들이 예언한 날이다. 중국의 예언서 'i-Ging'과 고대전서에도 이날이 언급되어 있다. 이번에도 예언이 어긋난다면, 고단한 인간 문명의 어제와 오늘이, 끔찍하게 지겨운 문화의 찌꺼기들, 도로, 증권, 인스턴트 음식 이런 것들이 내일도 계속된다면, 적어도 롤랜드 에머리히의 '2012'를 애교있게 넘길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화려한 종말 장면의 포르노그라피이자, 초대형 원자폭탄급 스펙타클이다. 그 속에서는 자연이 인간의 운명을 결정한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화산이 대륙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 암석들은 그나마 남아 있는 땅 위로 뻥튀기처럼 튀어 오르며, 히말라야는 거대한 쓰나미에 뒤덮힌다. (그렇지만) 이것은 대략적인 태도이다(큰 그림이다). 개략적이고 거리를 둔 관조적 자세는 도시와 대륙, 강을 산산조각 내는 가운데에 숨은 의도이자 수단이다. 그래서 관객은 사실 그것에 대해 불편해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번에는 에머리히가 그의 파괴욕을 더 포괄적으로 영상에 담을 수 있었다. 이미 전작들을 통해 준비는 충분히 했다. 전작들에서 이 슈바벤 출신 영화쟁이는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구조를 산산조각낸 바 있다. 고질라가 뉴욕을 뛰어 다닐때의 건축적 크리틱이 소용이 있었을까? '인디펜던스 데이'에서 백악관이 폭발할 때, 기타 다른 문명 세계는 파괴되지 않았었는가?
당연히 극적인 이유로 난장판 속에서 살아남고 해피엔딩을 맞는 인간들의 이야기도 서술해야 한다. 그래서 '2012'에는 그다지 성공하지 못한 작가가 등장한다. 그는 그동안 가족들에 소홀하다가 지구멸망 직전에야 비로소 스스로의 부성애를 발견한다. 관객은 그의 모험에 동행하며, 그가 컴퓨터 게임 속의 영웅처럼 여러 레벨의 재난을 극복하고, 어떻게 파이널 단계인 거대한 방주에 오르게 되는지를 보게 된다. 그 곳에 남은 인류가 모인다. 글쎄... 도대체 무엇을 하려고? 마침내 환경보호를 좀 진지하게 생각해 보려고? 가난과 착취, 폭력과 같은 인간 문명의 쓰레기들을 좀 분류해보려고?
영화는 여기에서 끝이 난다. 유토피아의 연출은 프로그램되어 있는 것이 아니므로, 그것은 당연한 결과다. 에머리히의 영화적 논리는 파괴의 창조에 집중되어 있다. 태풍에, 쓰나미에, 지진에 각종 재난을 총동원한 가운데 그의 논리는 여러모로 모순적인 상황에 맞닥뜨린다.
진보라는 이름의 '재앙' 세상 어느 감독도 아직, 현대와 기술에 대한 반발을 연출하기 위해, 기술적 창의성을 이런식으로 지속적으로 사용한 적이 없다. 진정한 재앙은 진보이다. 가장 최근에 에머리히는 선사시대 스펙타클 "10.000 B.C."에서 이를 이미 선보인 바 있다. 이 영화에서 고도의 계산력을 지닌 이집트의 선진 문명은 몇몇 맘모스 사냥꾼의 손에 놀아난다.
당연히 이 재난영화를 보다보면 거부감이 들수도 있다(?). 이 영화는 원죄의식과 심판의 환상을 산산조각낸다. 그리고 미디어의 마술과 같은 잠재력에 쐐기를 박는다. 스크린에서 공포의 순간을 잡아 그림으로 보면 덜 끔찍하다.
'2012'는 장르의 경계를 심하게 넘어섰다. 이번에는 단순히 몇천명의 미국인이나 이집트인들이 죽아나가는게 아니라 수십억이 죽는다. 그리고 그와 함께 그들의 사회와 문화 그리고 종교까지도. 이탈리아에서는 성베드로 성당이 무너지고, 그 직전에는 미켈란제로의 '아담의 탄생'에 금이 간다. 이 장면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창조'가 과거형이 되었다. 극장이 거대한 문명재건의 현장이 되고, 에머리히가 최고 감독관이 되는 것이다.
멸망을 보자 이것을 그리기 위해서, 등장인물들은 영화적인 관점에서 절대 영화의 중심이 아니라 가장자리에 간신히 존재할 뿐이다. 세계가 가라앉는 것을 목격하는 객관적 시점으로서만 말이다. 카메라가 이동해, 인간들이 전지적 입장으로 아포칼립스의 시나리오 위에 설 때까지, 주인공들은 반복해서 차를, 비행기를 혹은 다른 교통수단을 타고 폭발하는 세계를 질주한다. 그리고는 주인공들은 허공을 부유하며 침몰해가는 대륙을 바라볼 뿐이다.
이 영화는 인간의 시각으로는 멸망이 겨우 절반을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멸망의 순간을 제시하고 싶은 이라면 거시적인 안목을 필요로 한다. 그렇게 카메라는 세상에서 시커먼 대양만이 남을 그 순간까지, 항상 새롭게 화려한 소멸의 장면을 그릴 수가 있을 것이다.
롤란드 에머리히는 창세기를 다시 썼다. 그럼 무엇이 아직 남았을까? 멸망? 2년은 긴 시간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