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사마라구 '눈뜬 자들의 도시' 중에서
시간마다 갱신되는 수치에 살짝 흥분했던 하루...
부러 창백해 보이려했던 그의 심정이 저랬으려니...
그리고 당 최고위원이란 사람도 저 비스무리하게 연설했다...
이름도 모를 어느 나라나...대한민국이라는 나라나...정치판은 거기서 거기다...
인간의 보편성?
Freiburg schwarzwald (프라이부르그..슈바르쯔발트...검은 숲) 어느 산길...
해가 낮은 구름 속에 들어가 있어서 주위는 누런 색안경을 통해서 내다본 것처럼 뿌옇게 보였다. 바람이 읍내의 신작로 한복판에서 회오리 기둥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들은 고개를 처박고 신작로를 따라서 올라갔다. 영달이가 담배 한 갑을 샀다. 들판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날카롭게 들려 왔다.
그들이 마을 외곽의 작은 다리를 건널 적에 성긴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더니 허공에 차츰 흰색이 빡빡해졌다. 한 스무 채 남짓한 작은 마을을 지날 때쯤 해서는 큰 눈송이를 이룬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 내려왔다. 눈이 찰지어서 걷기에는 그리 불편하지 않았고 눈보라도 포근한 듯이 느껴졌다. 그들의 모자나 머리카락과 눈썹에 내려앉은 눈 때문에 두 사람은 갑자기 노인으로 변해 버렸다. 도중에 그들은 옛 원님의 송덕비를 세운 비각 앞에서 잠깐 쉬어 가기로 했다. 그 앞에서 신작로가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던 것이다. 함석판에 뼁끼로 쓴 이정표가 있긴 했으나, 녹이 슬고 벗겨져 잘 알아볼 수도 없었다. 그들은 비각 처마 밑에 웅크리고 앉아서 담배를 피웠다. 정씨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감탄했다.
* 황석영 '삼포 가는 길' 중에서...
다음 날 퀸은 컬럼비아 대학교 도서관에서 스틸먼의 책을 읽는 것으로 오전 시간을 보냈다. 아침 일찍 도서관을 찾은 그는 문이 열리자마자 맨 먼저 안으로 들어갔고, 대리석 홀의 정적 속에서 마치 망각의 지하실로 들어가도록 허락이라도 받은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졌다. 책상 뒤에서 꾸벅꾸벅 졸고있는 직원에게 졸업생 카드를 내보인 뒤 그는 서가에서 책을 뽑아 가지고 3층으로 올라가 끽연실의 녹색 가죽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창밖의 눈부신 5월 아침이 야외를 무작정 걸어보라고 유혹하는 것 같았지만, 퀸은 그런 생각을 떨쳐버린 뒤 의자를 돌려 창을 등지고 앉아 책을 펼쳤다.
* 폴 오스터 '뉴욕 3부작 -유리의 도시' 중에서...
"시계를 고치고 있군요"
돌아보니 미스 윤이 들어와 있었다. 그녀는 체온계도 혈압계도 또 주사침도 들고 있지 않았다.
"시계를 고치고 있다고 말했잖아요? 무얼 저만 그렇게 보세요?"
나는 그제서야 창문으로 시계탑을 내다 보았다. 좀 멀기는 하지만 사람이 하나 그 탑시계에 매달려 바늘을 끼워넣는 것이 보였다.
"그렇군요. 바늘을 끼워넣는군요."
"그럼 제 거울을 돌려 주세요."
나는 침상 귀에 팽개쳐둔 거울을 집어 미스 윤에게 내밀었다.
"용도를 몰라서 그냥 두어둔 것입니다."
"용도라뇨?"
"시계 바늘을 수선하기 때문에 그걸 돌려줘야 한다는 이유는 더욱 모르겠군요."
그녀는 한참 눈을 껌벅이고만 있었다.
"선생님은 아마 적적하실 때 거울을 들여다보신 적이 없으신 가봐요. 거울을 들어보노라면 잃어진 자기가 망각 속에서 살아날 때가 있거든요."
"참 괴상한 취미로군요."
"그렇게 생각되실지도 모르죠. 제가 틀리지 않다면 선생님은 분명 내력 깊은 이야기가 있으실 분인데, 그 이야기가 너무 깊이 숨어버린 것 같거든요."
나는 미스 윤이 왜 이런 소릴 지껄이고 있는 지 알 수가 없었다. 탑시계에 매달려 있던 사람이 바늘을 두개 얌전히 꽂아 놓고 내려갔다. 미스 윤은 거기다 시선을 준 채 전에 없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선생님 마음에도 이제 바늘을 꽂아보세요. 그럴 힘이 있을 거에요. 선생님에게는. 뭣하면 거울을 하루 더 빌려드리지요."
그녀는 거울을 다시 침대에 놓아두고 방을 나갔다. 이상하다. 이 여자는 틀림없이 나의 병세를 알고 있는 모양이다.
거울을 봐라?
* 이청준 "퇴원" 중에서
* 내 마음은 오랫동안 나이를 먹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인류 전체에 대하여 사랑을 외치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그와 반대하여 우리는 개별자로서만 개개인을 사랑할 수 있다고 타당한 주장을 한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하며, 사랑에 대한 그 말이 증오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덧붙이고 싶다. 인간은, 균형을 갈구하는 이 피조물은 자신의 등에 지워진 고통의 무게를 증오의 무게를 통해서 상쇄한다. 그러나 이 증오를 순수히 추상적인 원리들, 불의, 광신, 야만성에 집중시켜 보라! 아니면 당신이 인간의 원리 자체마저 혐오스럽게 생각하는데까지 이르렀다면, 인류 전체를 한번 증오해보라! 이런 증오는 너무 초인간적인 것이며,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분노를(인간은 이 분노의 힘이 한정되어 있음을 알고 있다) 가라앉히고자 할 때 결국 분노를 한 개인에게만 집중시킬 수 밖에 없는 법이다.
나의 공포는 거기에서 온다. 이제 제마넥은 언제든 자신이 변했음을 (게다가 그는 방금 의심스러우리만치 기민하게 이 점을 나에게 보여 주었다) 선언할 수 있고, 내게 용서를 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게 끔찍하게 여겨지는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무어라 말 할 것인가? 무어라 대답할 것인가? 그와 화해할 수 없다는 것을 그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화해한다면 나의 내적 균형이 일시에 깨져버리라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러면 내 내면의 저울의 한 쪽이 단번에 공중으로 날아가 버리리라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를 향한 나의 증오가 내 젊은 날에 닥친 고통의 무게와 평형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를 향한 나의 증오가 내 젊은 날에 닥친 고통의 무게와 평형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나는 그를 반드시 증오해야만 한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 밀란 쿤데라 '농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