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가본 길의 여정과 그 길이 다다르는 곳에 대해서는 결코 이러쿵저러쿵할 수 없을뿐더러, 사람들의 발길이 더 닿은 쪽 길을 택하든 덜 닿은 쪽을 택하든 “그게 모든 것을 바꾸”기는 마찬가지다. 뜻의 계조階調를 독자가 놓칠까 봐 프로스트는 이 시를 너무 심각하게 읽는 독자의 머릿속 거품을 터뜨릴 목적으로 함정까지 파놓는다. “길 갈리는 어름 서성댄 발길 두 쪽 다 엇비슷이 나있어도 / 두 길 다 낙엽에 덮이어 발자국 하나 없이 동등하게 놓이어 있어”라고 슬쩍 끼워놓는다. 기실 그 나그네 앞에 놓여 있는 갈래길은 어느 쪽 길이든 더 발길이 닿고 덜 발길이 닿은 것의 문제가 아니고 (남이 많이 갔던 길이든 아니든 그 나그네한테는 초행길이므로 상관 없는 일이다.) 어느 길을 고를지 그 선택에서도 우열이 있는 게 아니라 “동등할” 뿐이다.
그러나 토마스한테는 이 시에 개인적인 메시지가 담겨있었다. 토마스와 프로스트가 함께 걸었던 산책길, 그때면 토마스는 진귀한 들꽃을 보여주겠다는 둥, 새 둥지를 보여주겠다는 둥 하면서 프로스트를 이끌었고 으레 진귀한 들꽃도 새 둥지도 없어서 토마스는 열없어 했는데, 프로스트는 그런 토마스를 보며 재미 있어 했다. 그러다가 토마스가 하도 남부끄러워 하니까 한번은 프로스트가 이렇게 토마스를 꾸짖었다. “어느 쪽 길을 택하든 자네는 늘 한숨만 쉬고 다른 쪽 길을 택할 걸, 하며 후회하는구먼.”
"세상에는 돌이킬 수 없는 일과 돌이킬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해. 그리고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이야. 이미 옛날로는 돌아갈 수 없잖아. 그건 그렇게 생각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많은 일들은 이미 딱딱하게 굳어버리고 말아. 양동이 속에서 시멘트가 굳어지는 것처럼. 그리고 그렇게 되면, 우리들은 더 이상 돌이킬 수가 없어져. 결국 네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미 너라고 하는 시멘트는 단단하게 굳고만 셈이니까, 지금의 너 이외의 너란 없단 얘기지?"
"아마 그런 걸꺼야" 하고 나는 불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중에서...
소설 속 12 살 소녀의 말.
나의 12 살 ???
케빈은 12살이던가? 13 살이던가?
12살에 시간에 대해 이렇게나 이해했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지난 4월, 5월 거의 두달여 가까이 고민하고 망설이게 했던 주제.
오랜만에 만난 하루키...
20대 초반 대학시절 상실의 시대를 읽으며 느꼈던 감흥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이제는 주인공의 또 작가의 지적 허영을 슬쩍 비웃으며 입가에 미소를 지우기도 하지만
글을 읽노라면 항상 나를 돌아보게 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그래도 하루키가 언급하는 재즈 곡들은 너무 좋다...
그러나 나는 듣고 있지 않았다.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미치광이 같은 것을. ´내가 뭐가 되고 싶은지 말해줄까?´하고 내가 입을 열었다.
´내가 뭐가 되고 싶은지 말해줘? 만일 내게 그 지랄같은 선택권이 있다면 말야.´
´뭔데? 욕 좀 하지 말고 말해봐.´
´너 그 노래 알고 있지? (호밀밭을 걸어오는 사람을 붙잡는다면) 하는 노래 말이야. 바로 내가 되고싶은 것은.....´
´그건 (호밀밭을 걸어오는 누군가를 만나면)이라는 노래야.´ 하고 피비가 말했다. ´그건 시야. 로버트 번스가 쓴.´
´알고 있어. 로버트 번스의 시라는 것은.´
피비의 말이 옳았다. (호밀밭을 걸어오는 누군가를 만나면)이라고 해야 옳았다. 사실 그때는 그 시를 잘 몰랐다.
´만나면을 붙잡는다면으로 잘못 알고 있었어.´하고 말했다. ´어쨌거나 나는 넓은 호밀밭 같은 데서 조그만 어린애들이 어떤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을 항상 눈앞에 그려본단 말야. 몇천 명의 아이들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곤 나밖엔 아무도 없어. 나는 아득한 낭떠러지 옆에 서 있는 거야. 내가 하는 일은 누구든지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것 같으면 얼른 가서 붙잡아주는 거지. 애들이란 달릴 때는 저희가 어디로 달리고 있는지 모르잖아? 그런 때 내가 어딘가에서 나타나 그 애를 붙잡아야 하는 거야. 하루 종일 그 일만 하면 돼. 이를테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는 거야. 바보같은 짓인 줄은 알고 있어. 하지만 내가 정말 되고 싶은 것은 그것밖에 없어 바보 같은 짓인 줄은 알고 있지만 말야´
피비는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또 ´아빠는 오빠를 죽이고 말거야.´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 J.D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 중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다보면...
주인공이 끼고 다니는 ´위대한 개츠비´와 ´호밀밭의 파수꾼´만이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제대로 된 소설이다...
어쩌고 저쩌고 하는 꽤나 시건방진 문구가 나온다...
당시에 작가는 커녕 제목조차 처음 들어본 나로서는 일단은....도대체 어떤 책인데??라는 호기심부터 갖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키 소설 속의 그 아이만큼 감명받은 건 아니지만...
´상실의 시대´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캐릭터와 그들간의 갈등 구조 등이 이 2권의 흐름과 꽤나 비슷하기도 하다고 느끼면서...
하루키가 이 2권의 캐릭터와 플롯을 어느 정도 따온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고...
뭐 그렇다면 주인공이 그 정도 평가를 내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보고...
(꽤나 강력한 평을 먼저 접하고 읽은 덕분에)
소설과는 직접 관계도 없는 딴지도 한번 걸어보며...
꽤 즐겁게 책장을 넘길수 있었다...
둘 다 재미있는 책들인 것만큼은 사실이니까...
아무튼 이러이러한 연유로 읽게 됐던 호밀밭의 파수꾼은
2003년 봄, 사두고 읽지 못한 몇 권의 책 중 한 권이라는 이유로...
한국을 떠나오는 짐 사이에 껴서 나와 함께 독일로 왔었다.
특별한 의미없이 정말로 우연히 유학길을 동행했었던 이 책은 이젠 3년을 바라보는 이곳 생활의 추억을 여러모로 함께 담아서 내게 만큼은 너무나 소중한 책이 되어버렸다.
힘들 때... 갑자기 한글이 너무너무 읽고 싶을 때...
맘 편하게 집어들고 단숨에 읽어버리곤 크게 한번 한숨을 쉬어 볼 수 있게하는 위안거리가 되주었고...
또 이 곳 친구들에게 빌려 주고 돌려 읽으며,
각기 나름의 포스트잍을 끼워넣으며 또다른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통로가 되기도 했다...
피비가 모아둔 용돈을 빌려줄 때 주인공 소년과 함께 펑펑 울어버린 친구도 있었고...
피비처럼 자신을 잡아주는 동생이 있었다면...그렇게 방황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던 친구도 있었고...
물론 이 책이 왜, 도대체 어디가 훌륭하다는지 모르겠다던 친구도 있었다...
연말에 꽤 오래 (거의 1년) 이리저리 떠돌던 이 책을 돌려 받아서, 오랜만에 다시 한번 집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