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2월 어느 금요일...


사무실에서는 매년 초에 단체로 스키여행을 떠난다...

보통 스위스나 오스트리아 알프스가 행선지인데...

올해는 한번도 가보지 못했던 폴란드라 꽤 구미가 당기긴 했지만...

타지도 않을 스키여행 때문에 한겨울에 황금같은 휴가를 이틀이나 날려야 하는 게 영 마뜩찮아서 결국에 관뒀더랬다... 


매년 되풀이되는 투덜댐..."안가는 사람은 돈으로 주면 안되는거야???"


사무실 직원의 근 80%가 스키를 타러간 이틀째날...

휑한 사무실에 갑자기 황당함과 웃음이 뒤섞인 셀린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어제 슈트트가르트 출발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가 연착되는 바람에...

프랑크푸르트에서 폴란드행 비행기를 옮겨타는 시간이 너무 짧아가지고 난리도 아니었대...

덕분에 폴란드 내려서 보니까 슈트트가르트팀 짐은 하나도 도착안했더래...

짐문제 처리때문에 공항에서 한참 기다리다가 또 한참을 버스타고, 스키장에 도착하니 한밤중인데...

다들 세면도구도 없고, 갈아 입을 옷들도 없고, 어차피 스키가 없어서 다음날 날 밝아도 스키도 못타고...

슈트트가르트 팀은 호텔 라운지에서 밤새 술펐대..."


+1.  2월...다음 월요일...


여행을 다녀온 아이들의 얼굴이 영 푸석했다...


나   : 이야기 들었어...돌아오는 길은 무탈했어???

안야: 말도 마...3박 4일 여행에...한번은 일이 있을 수도 있다고 쳐...

  어떻게 왕복 여행이 다 문제가 생길 수가 있어???

  돌아오는 길에도 또 비행기가 연착되서...결국에 프랑크푸르트에서 슈트트가르트로 오는 비행기는 놓치고...

  DB 기차표 받아서 기차를 타고 오긴했는데...

  그 많은 사람들 기차표 받느라 공항에서 또 한시간도 넘게 기다렸어...

  그나마 안드레아스는 돌아오는 편에도 짐이 또 없어지고...


  최고는...미국으로 가야되는 승객이 비행기 놓쳐서 공항에 직원한테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니...

 "I have no idea"라고 했던 거였어...


왕복...루프트한자였다...


+2.  덕분에 올 한해 내내...누가 휴가를 떠날때마다...

어느 항공사로 끊었냐???

당장에 꼭 필요한 것들은 꼭 기내용 가방에 짐을 싸야 한다...등등이 화제였다...


+3.  9월...어느날...

그날도 또 비행기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안야: 정말 내 생애 다시는 루프트한자는 안탈거야...

나   : 근데...있잖아...내년 봄에 우리 부모님 오실 때 아마 루프트한자를 타시지 않을까 싶어...

 (당시 한창 비행기표를 알아보는데...가장 저렴한 편이 서울-프랑크푸르트 루프트한자 140만원대였다...)

안야: 아...음...어쩌면 아시아에서 오는 거는 괜찮을지도...음...

나   : 한국에서 오는 편도 루프트한자 서비스가 별로기로 좀 유명하긴해...


그래도 싼 표 앞에 장사있나???


+4.  10월 중순...


2주가 넘게 틈틈히 항공편을 검색하던 중에 루프트한자에 부산-뮌헨이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됐다...

전에 알았더라면 진작부터 이 노선을 자주 이용했을텐데라고 생각하며...

루프트한자 홈페이지에서 가격을 검색했더니...세상에 94만원선이다...

직항노선을 이보다 더 싸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없고...

싸게 나온 표를 발견했을 때 사두지 않으면, 당장 그 다음날에라도 두배의 가격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아는지라...

당장에 표를 예매하고...싼데다가 부모님도 덜 고생하시고, 인천까지 이용경비도 절약되서 마냥 뿌듯해했더랬다...


나중에 알고보니 반짝 판매된 얼리버드 프로모션 기간에 딱 맞춰졌던 모양이다...


+5.  한달 뒤...11월 중순...


토요일 아침...루프트한자가 메일을 한통 보냈다...'Change of Reservation'...

예약이 변경되었으니 확인하고...이의 있으면 전화를 하란다...

14일 이내에 연락하지 않으면, 더 이상 '비자발적'인 건으로 간주되지 않기 때문에 예약변경이 불가능하단다...

여전히 눈에 졸음이 가득하다가...순식간에 잠이 확 달아났다...

이게 무슨 소리??


주말에는 상담파트도 다 휴무라...부랴부랴 공항으로 전화를 해서 자초지정을 알아봤더니...

직원 왈, "내년 4월부터 부산, 인천 구간을 단항하기로 본사결정이 내려와서요...고객님..."한다...


항공사 사정으로 예약을 변경하면서...그에 대한 설명이나 사과 한마디 없이 띡 날아온 메일에 맘이 상했다...

'아...루프트한자...독일스러워...' 생각을 했다...


+ 6. 이틀 뒤...11월 중순의 월요일...상담...

뮌헨-프랑크푸르트-인천으로 변경된 예약을 프랑크푸르트-인천으로 수정해달라고 일단 부탁은 했는데...

일단은 단항구간 보상을 어떻게 할지 아직 결정이 나지 않아 예약 변경을 해줄수 없단다...


아...대책없이 노선부터 없앤거구나...

I have no idea가 문득 생각났다...


+7.  일주일 뒤...11월 중하순 어느날...상담..."죄송합니다. 기다려주십시오, 고객님..."

이주일 뒤...11월 하순 어느날...상담..."죄송합니다. 기다려주십시오, 고객님..."

삼주일 뒤...12월 초순 어느날...상담..."죄송합니다. 보상을 기다리는 다른 고객들도 많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기다려주십시오, 고객님..."


한국 업무 시간에 맞춰서 전화를 하는 것도 은근히 스트레스인데다가...

매번 대책까지 없으니...이제 욱할데로 욱해서...

다시는 루프트한자는 안끊겠다고...다짐을 했다...


+8.  한달 뒤...12월 12일 아침...

루프트한자로부터 마침내 메일이 날아왔다...

예약 상담을 위해 전화를 해달란다...


상담원: 편도당 15만원씩(아시아나 부산-인천 항공료) 현금 보상을 해서, 계좌로 입금해드리기로 결정이 났습니다...

괜찮으신지요, 고객님...

나      : 편도 15만원이면, 왕복 30만원이요? (두 사람이면...60만원...앗싸...)

상담원: 네...그렇습니다...고객님...

나      : 아...잠시만요...계좌번호가요...


쩝...좋아하는 티를 너무 낸 것 같다...


+9.  덕분에 한국-독일 직항 왕복권을 64만원에 끊은셈이 됐다...

독일 내 루프트한자 서비스를 비추어 볼때, 이 정도 후한 보상은 한국이니 가능했지 않은가 싶으다...

독일에서 출발해서 부산까지 왕복하는 표를 독일 홈페이지에서 예매했더라면, 같은 보상이 나왔을지 살짝 의문이다...


음...이정도 서비스면...한국에서 루프트한자를 끊는 건 괜찮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싼 데는 장사가 없다...

탑승객의 계좌로 보상금을 지급한다고 해서...

부모님께 각각 인천까지 왕복 경비를 빼고, 20만원씩 용돈을 드린셈 치기로 했다... 

Posted by GIN :